저녁밥을 주지 않아 침대 아래 초콜릿을 숨겼다

눈치 보는 아이로 자란다는 것

by Enero
우리 딸 다이어트해야 해서 저녁은 없어


12살 때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 홈스테이를 했던 곳은 고등학생 딸, 아들이 하나씩 있는 한인 가정이었다.

엄마가 나를 보러 오클랜드에 왔을 때 묵었던 숙소 옆방에 묵었던 가족으로, 그 가족은 막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집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엄마는 워낙 붙임성도 좋고 착해서 사람들이 많이 따르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들도 잘 사귀었는데 이런 우리 엄마의 매력에 순식간에 그 가족이 매료되어서는 나를 맡아주겠다고 선뜻 나섰던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한 달여를 같이 오며 가며 지내보니 좋은 가족인 것 같다며 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도록 권했고, 나도 그러겠다고 했다.


엄마가 떠나고 그 집에서 지내면서 또 모르는 가족의 손에 맡겨진 열두 살의 나는 새로운 눈치를 보는 삶을 시작했다.

그 집 언니, 오빠들은 체격이 꽤 있는 편이라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한 듯했다. 그래서 그 집에는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우리 집에서는 간식 없음. 4시 이후 취식 금지”


그 말인즉슨, 저녁 식사는 없다는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12살이었다. 한창 성장기였고, 아직 생리도 시작하지 않은 어린이였다.

밤이 되면 배가 고파서 몰래 1층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열고 먹을만한 게 없어서 김치를 꺼내 먹고 잠을 잤다.



나는 초콜릿 안 좋아해


지금의 나는 초콜릿을 잘 먹지 않는다. 특히 스니커즈나 MARS 같은 초콜릿 바는 더더욱 손이 안 간다.


밤마다 배고플 걸 생각해서 나는 빈 플라스틱 쿠키 통을 챙겨다가 침대 아래 숨겨 두었다.

그리고 하교 길에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대신 그 돈으로 학교 앞 슈퍼에서 초콜릿을 하나씩 사고 집으로 걸어갔다. 지금은 국내 마트나 수입 과자 판매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MARS, Maltesers, Milka, Bounty, TWIX 같은 초콜릿을 하나씩 사서 침대 아래 쿠키 통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밤에 정말 배가 고프거나, 가족이 그리워 눈물이 터지는 날이면 하나씩 꺼내 먹었다.


덕분에 ‘간식 없음, 4시 이후 취식 금지’와 같은 규칙과는 무관하게 내 얼굴은 날로 통통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 걸린 적도 있었다.

예쁘게 초콜릿을 채워 정리해 둔 쿠키 통. 뚜껑을 열고 오늘은 무얼 먹을지 고민하던 차에 그 집 언니에게 걸려버린 것이다.

그 언니는 나를 아주 괘씸하게 생각했다. 언니는 내가 ‘나를 돌봐주는 가족과 나눠 먹지 않고 식탐을 부리는 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한차례 욕을 먹고 나니 초콜릿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 가족이 외식을 나갈 때에도 나를 데려간 적은 없었다.

부엌과 거실은 1층, 방은 2층에 있는 집이었는데, 1층에서 도란도란 과일을 나눠 먹거나 음식을 먹는 소리가 들려 슬그머니 1층으로 내려가면 항상 나를 향해 “왜 내려왔어?” 소리가 나서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내 간식을 챙겨 주거나 저녁에 초대를 해 줬다. 그래서 나는 곧잘 친구 Y의 집에서 Y의 어머니가 차려준 간식과 밥을 먹거나, 다운타운에서 한인 식당을 운영하던 친구 G의 어머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먹곤 했다. 아빠 친구분도 근처에 살고 계셔서 그 집 가족들이 나를 데리고 소풍을 가 주거나 용돈을 챙겨 주기도 하셨다.


그럴수록 나는 홈스테이 식구들의 눈 밖에 나고 있었다. 내가 나돌아 다니는 것이 자기 집 욕을 먹이는 짓이라 했다.



우린 너희 엄마 때문에 너 데리고 있는 거야


그 가족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우리 엄마가 성격도 좋고 싹싹하게 아줌마한테 잘했기 때문에 나를 데리고 있는 것이지, 내가 좋아 데리고 있는 게 아니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보면 공짜로 나를 맡아 준 줄 알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더더욱 엄마에게 말을 못 했다. 엄마가 속상해할 것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다니고 있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엄마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게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겉으로 더 밝은 척, 사교성이 넘치는 척, 애교가 많고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척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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