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는 아름다운 계절'
그날 이후, 우리는 연습이 있는 날마다 늘 서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면, 살짝 웃었다.
수십 명의 단원들 사이에서
채플홀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 봄 햇살 한 줄기가
유독 그 아이만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동아리는 여름이 되면 늘 여름캠프를 떠났다.
우이동 민박집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그 계절,
우리도 그 북적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우리의 MT는 조금 특별했다.
1박 2일 동안 빡빡하게 짜인 시간표 속에서
만나자마자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고,
가장 큰 방에 모여 합창 연습을 한 뒤 장기자랑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포크댄스를 췄다.
요즘처럼 몇 명이 모여 금방 릴스를 찍는 시대와는 달리,
삼사십 명이 한꺼번에 손을 맞잡고 수십 번을 빙글빙글 돌던 그 시간에는
지금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모르는 낭만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 동아리는 분명 어딘가 비범하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와 더 가까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캠프 전날,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포크댄스 시간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며 손을 잡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아이의 근처를 맴돌았다.
음악이 바뀌고, 짝을 바꿔가며 손을 잡는 그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그 아이의 손이 내 손에 닿았다.
손을 맞잡고 정해진 순서대로 한 걸음, 두 걸음
빙글, 또 빙글 돌았는데
그 짧은 몇 초 동안,
이상하게도 주변의 소리도, 사람들의 움직임도
전부 흐릿해지고
그 아이와 나만 조금 또렷해진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손을 놓고 나서도
한동안 심장이 제 속도를 찾지 못했다.
밤이 되고,
술잔이 몇 번 오간 뒤에 그 아이가 나를 불러냈다.
민박집 앞,
사람들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거리에서
우리는 잠깐 마주 서 있었다.
그 아이는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술기운 때문인지 약간을 상기된 얼굴로
그리고 조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만나볼래?”
그 말이 떨어지던 순간에도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고
그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이미 마음은 알고 있었는데도, 그 말을 직접 듣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밤의 공기와,
조금 어색하게 웃던 그 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학교는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닿는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학기 시작 전부터 서로의 공강 시간에 맞춰 시간표를 짰다.
수업이 끝나면 횡단보도를 향해 내리달렸고,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 전
각자의 자리에서
10, 9, 8, 7… 초를 세며
남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표정과 손짓으로
서로를 반겼다.
그 모든 순간이, 이상할 만큼 특별했다.
그 아이는 날씨가 추우면 어김없이 웃도리를 벗어
내 어깨에 덮어주었고,
자판기에서 뽑은 따뜻한 데자와를 손에 쥐여주었다.
날씨가 더우면 내가 벗은 웃도리를 자기 허리에 매고,
걷다가 은행 ATM 부스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며 땀에 절은 얼굴을 서로 보며 깔깔댔다.
비가 오면 늘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들어서
나는 거의 젖지 않았지만,
그 아이의 어깨는 항상 절반쯤 젖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는 심장이 간지럽고,
손을 잡을 때는 얼굴이 빠알갛게 달아오르고,
잠시 못 볼 때에는 애가 타고, 머릿 속에 온통 서로의 얼굴만 동동 떠오르는
연애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얀 가슴에 함께 추억이라는 색을 물들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