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불행하다
영화 <꿈의 제인>에서 트랜스젠더 제인은 소현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인생이 참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태어날 때부터 쭉 불행이 이어지는 기분?
행복은 드문드문, 아주 가끔 있을까 말까?”
이 대사는 한동안 마음속에 머물렀다.
누군가를 붙들고 싶어도 결국은 혼자가 되는 인생,
행복을 원하는 만큼 닿지 않고
불행 사이에 섞여 있는 작은 온기만으로는
도무지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세상은 사람마다 소중하다, 인생은 아름답다,
그런 말들로 우리 삶을 예쁘게 포장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삶이 언제나 반짝이진 않는다는 걸.
다만 모두가 그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견디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을 알기에
그런 미사여구가 필요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래야 겨우 하루가 굴러가니까.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것들을 다 걷어내고
하루를 그냥 시간 단위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출근길 좋아하는 노래 3분,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30초,
큰맘 먹고 시킨 점심 30분,
애인과의 통화 10분,
아이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 30초,
백점 받은 시험지를 들여다보는 30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15분.
이것들을 모으면 겨우 한 시간 남짓이다.
행복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의 실제 분량.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오히려 솔직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조금은 쓰렸다.
일반화의 위험을 알고도
물론 감정을 이렇게 따로 떼어 세는 게
사람의 하루를 온전히 설명하는 방식은 아니다.
어떤 행복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로 남고,
어떤 순간은 몇 초뿐이지만 오래 마음을 붙든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계산이
적어도 내 일상을 바라보는 데는
꽤 정확한 척도가 된다고 느꼈다.
누구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괜히 힘들어하는 건 아니구나”
그 확인 정도는 해줄 수 있었으니까.
외로움도 비슷하다.
아이와 스친 짧은 스킨십,
애인과의 통화,
직장 사람들과의 몇 마디.
그 시간을 다 더해도
하루 중 외롭지 않은 순간은 길지 않다.
같이 있어도 마음은 금방 비어버리는 날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의 바닥에는 외로움이 깔려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혼자인 순간이 길어질수록 그 말은 점점 공허해진다.
누군가 내 부재를 떠올려주고,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손을 잡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되어줄 때
비로소 ‘소중함’이라는 게 형태를 갖는 것 같다.
그 기준대로라면
혼자인 사람은 스스로 소중하기도,
행복하기도 어렵다.
애써 누군가 곁에 두려고 해도
언젠가는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이 문득문득 실감 난다.
잠깐의 행복은 그 긴 외로움과 불행을 견디기엔
언제나 너무 짧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을 못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묻고 싶다.
당신의 하루는 어떤 비율로 이루어져 있나요?
그 비율 속에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