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레카야자 Apr 25. 2020

"사장님, '여전히' 나빠요." ②

처음 들은 한국말 'XX 새끼'…"맞아야 일 잘하지"

이번에는 안성으로 취재를 다녀온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 특집의 일환이었다.

캡이 취재 지시를 하며 전한 

"공장장한테 이주노동자가 맞았대"

이 한마디에 나는 전의가 불탔다.



200408 뉴스데스크



이 공장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주 노동자는 총 세 명.

그 중 둘은 노동부에서 직접 나와 감사를 마친 뒤 직장을 바꿔주었고

한 명은 여전히 해당 공장에서 근무 중이었다.


근무지를 바꿀 수 있었던 둘 중 한 명은 공장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우였고

또 다른 한 명은 면허가 없는 지게차 운전을 지시받아 부당한 업무를 강제적으로 하게 된 경우였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한 명은 구체적으로 이런 사항들이 없어 

본인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해당 공장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 경우였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고용허가제'의 맹점이 드러난다.





고용허가제는 말그대로 피고용인인 이주노동자들의 최초 근무는 물론

근무지 이전에 대해서도 고용주가 '허가' 해줘야 하는 제도이다. 

어떠한 일신상의 이유로든 계약 기간 내에 이주 노동자가 근무지 이전을 원할 경우에는 

고용주가 허가를 해줘야하는데, 번거롭게 새로운 노동자를 또 구해야하는 고용주들은 

노동자를 잘 놔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고용주가 어떤 대우를 하고 무슨 짓을 하든 

노동자는 해당 근무지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너 나가고 싶으면 그냥 니네 나라로 꺼져"

흔한 경우다. 



200408 뉴스데스크 <처음 들은 한국말 'XX 새끼'…"맞아야 일 잘하지">



이 날 우리는 공장 근처에 도착해 공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해당 공장에 울며 겨자먹기로 남아있는 한 명의 이주 노동자에게 연락을 해 

우리 차로 불렀다. 



<미방분> 해당 공장을 떠나지 못한 이주 노동자와의 인터뷰. 이주노동자/취재기자/이주노동자인권센터활동가



공장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MBC 로고가 붙지 않은 차량으로 미리 준비해갔고

공장 약 200m 밖에서 그를 태워 더욱 먼 곳으로 이동해 차 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보도가 나가기 전 그는 다시 연락을 해와

인터뷰를 리포트에 반영하는 것을 거부했다.



<미방분> 인터뷰 후 cctv를 피해 논길을 가로질러 공장으로 복귀하는 이주노동자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공장으로 되돌아가면서도 불안해했다. 

공장 바깥에까지 군데군데 설치된 공장의 cctv를 피해 그는 논길을 빙 둘러 복귀했다.

그가 공장으로 복귀하고 나서 우리는 시간차를 두고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문으로 들어서 취재기자와 이주노동자 인권 활동가는 사무실로 향했고

나는 공장측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이주노동자들이 지내는 열악한 기숙사를 스케치했다. 




<미방분>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서둘러 찍느라 컷 별로 녹화버튼을 끊어 누르지도 않고 재빨리 스케치를 한 뒤

나도 사무실로 들어갔다. 


역시나 폭력을 행사했던 그 공장장은 현장에 없다고 했고 

직원 두 명이 이미 잔뜩 언짢은 표정과 목소리로 취재기자와 대화 중이었다.



200408 뉴스데스크 <처음 들은 한국말 'XX 새끼'…"맞아야 일 잘하지">



직원들도 해당 이주노동자들과 '그 일'에 대해 잘 알고있는 듯 보였다.

모든 건 '오해'이고 공장장의 행동이 어떻게 '폭력'이 되느냐며 우리에게 

따져 물었다.


'아들 뻘' 애가 대들어서 멱살을 좀 잡았고 좀 밀쳤을 뿐이라며 항변했다. 

그런 일로 노동부에서 와서는 자기들 얘기는 듣지도 않고 '그 놈' 말만 듣고는

직장을 옮겨주다니 억울하다는 얘기였다.


"한국 사회가 어찌된 일인지 '거꾸로' 돌아간다"며 

"죄다 이주노동자 편만 들어준"다는 푸념을 덧붙였다.



200408 뉴스데스크 <처음 들은 한국말 'XX 새끼'…"맞아야 일 잘하지">



이주노동자 취재를 다니며 일관된 그들의 말은 

이주노동자들의 생활이나 근무 행태는 보지 않고 '자기네들'한테만 그러냐는 것이었는데

참 … 뭐랄까

고용자들의 태도를 잘 나타내줄 수 있는 멘트들을 쏟아내주니 방송을 생각하면 고마우면서도

정말 저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걸까 씁쓸한 경우가 많았다. 


리포트에는 직접 현장에 다녀온 해당 공장의 사례와 

구타가 일어나는 여러 다른 현장들을 더해 보도했다. 



200408 뉴스데스크 <처음 들은 한국말 'XX 새끼'…"맞아야 일 잘하지">




아마 내가 본 리포트 중 욕설로 인한 '삐- 처리'가 가장 많았던 리포트가 아니었나 싶다.

위 사진들은 내가 다녀온 안성 공장의 사례는 아니고,

여러 형태의 폭력에 시달리는 이주 노동자 본인들이 확보한 영상들이었다.


누군가는 -위에서 언급했듯- 우리나라가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만 편중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귀기울여주는 사람이 조금만 더 많았어도 이런 영상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들이 말해도 믿지 않거나, 소리쳐도 듣지 않는 사회라서 그들은 '살기 위해' 영상을 확보하고 녹취를 땄다.

어쨌거나 그야말로 제보 영상들이 살아있는 리포트였다.




200408 뉴스데스크 <처음 들은 한국말 'XX 새끼'…"맞아야 일 잘하지">

 



작년 여수에서 또다른 이주노동자 취재를 했을때 제보자는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워 묵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성 공장 취재를 하며 

점심시간에 공장 밖에 잠깐 나왔다 들어가면서도 

두려움에 사주경계를 하던 그 공장 노동자의 모습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나도 참 부끄러웠다.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


때리는 사람은 따로 있고

부끄러운 사람은 또 따로 있는 걸까.


부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폭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의가 불타올랐다는 이야기를 글 서두에서 한 바 있다.

취재기자와 현장으로 떠나는 차에 올라 나는 그 '폭력'이 어느정도 수위였나를 물었고

선배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거나 발로 걷어찬 정도는 아니고 

"팔이나 등 정도를 때렸고 멱살을 잡고 흔들거나 밀친 정도"라고 말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내심 '에이 별로 큰 일은 아니네'하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단발성이 아니라 

일터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해도

별 일이 아닐까.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직장에서 그런일을 겪었을때 

'에이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것도 아니고 발로 차인 것도 아닌데 

별 일 아니지 뭐, 그냥 지나가자' 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부끄러웠다.









관련 리포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713347_32524.html


매거진의 이전글 "사장님, '여전히' 나빠요." 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