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고 오랜만에 느끼고 오랜만에 끄적였다.
브런치를 보다가 이 책에 있는 ㅡ초2가 썼다는ㅡ 한 문장을 보고 나는 바로 교보문고로 향했다. 태어나 시집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친구는 내가 사 온 이 책을 보고 어떻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이렇게 낭비할 수 있냐며 농담섞인 소리를 지껄였지만 페이지의 여백은 나에게 중요한 메모장이 된다.
요즘엔 ㅡ브런치를 시작한 후 더욱ㅡ 생각나는 것들을 주로 아이폰에 적다가 오랜만에 펜을 잡고 손으로 메모 해보니 글씨가 더 개판이 됐 감회가 새로웠다. 손으로 쓴 글자는 타이핑 한 글자보다 더욱 무게가 실린다고나 할까.
아무튼 오늘은 술마시자는 친구들의 성화에도 홀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느끼고 끄적거리고 했다.
내가 은근히 좋아하는 초등학교 2학년 꼬마시인 한 분 계신다. "나무는 여름이면 매미소리로 운다"는 시를 썼다고 한다. 나보다 백배천배 낫다. p13
본 구절을 인터넷에서 보고 이 책을 샀다.
아마도 꼬마시인은 그저 나무를 보고 나무얘기를 한 것이겠으나 저 말은 내게 큰 파장이 되어 왔다.
나무는 나무 스스로 소리를 낸 적이 없다. 내는 법을 모른다. 아침엔 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가 그 나무 소리이다가 저녁엔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그 나무 소리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일거다. '마음나무'에 어떤 사람이 매미처럼 붙었는지, 떨어뜨릴래야 떨어지지 않는 그 사람으로 우리는 운다.
2016년 초 겨울, 내 마음나무에 붙어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그 사람으로 나는 울었다.
그녀가 내게 붙여준 적 없지만
어느덧 내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슬픔으로 울었다.
이제 알았다. 여태는 몰랐다. 나무에게 그 여름 매미는 분명 사랑이었을거라는 걸.
네가 보고 싶어서 오늘밤은 가르릉가르릉 비가 내린다. 이건 백석한테 배운 문장이다. p28
백석 선생과 안도현 선생에게는 그 날 밤 비가 '그 사람'이었나보다. 마음 속 그리움을 품은 이들에게는 온 세상 모든게 그 사람이다.
그녀가 보고싶어서 아침엔 햇살이 비추고
그녀가 보고싶어서 오후엔 바람이 불고
그녀가 보고싶어서 밤에는 비가 내린다
그녀가 보고싶어서 땅에서 꽃이 피고
그녀가 보고싶어서 길가엔 가로등이 켜지고
그녀가 보고싶어서 하늘엔 구름이 달을 놔두고 떠난다
문득 어느날은
그녀의 밤에도
내가 보고싶어서 가르릉가르릉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초등학생들 앞에서 강연이라는 형식의 말을 해보았는데 꽃밭에서 꽃을의 귀에 대고 혼자 말하는 것 같았다. 꽃들은 자기들끼리 흔들리고 키득거리고 반짝이는 것이었다. 내 말은 지나가는 바람소리였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p34
안도현 선생이 '꽃'과 '바람'같은 비유를 함부로 쓰셨을리 없고, 따라서 꽃에게 있어 바람이 결코 의미없이 지나가는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르실리 없다.
꽃은 바람으로 사랑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이룬다
우리에게, 적어도 나에게 안도현 선생은
영원히 바람이었으면 좋겠다
어제 매미가 앉아 울던 자리에 오늘은 풀벌레들이 날아와 운다. 내일은 눈발이 날아와 울겠지. p37
거짓말.
어제는 매미를 바라보던 네가 울었고
오늘은 풀벌레 소리를 듣는 네가 울었을테고
내일은 눈발을 맞으며 네가 울겠지.
설레지 않으면, 하늘을 보면서 기다리지 않으면, 첫눈이 아니다. 첫 키스가 그러하듯이. p41
에이 선생님, 처음을 어떻게 기다려요.
기대하지 않은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현듯 찾아와 설레는 처음이죠.
첫 키스가 그러했듯이.
당신과 나 사이 울음을 참으며 밤의 국경을 넘는 새 떼가 있다. p46
너에게로 날아간 수많은 새 중
한마리만이라도 날아왔으면 좋겠다
그 울음, 참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먼저 더 크고 더 높이 울어줄 수 있을텐데
가끔 누가 묻는다. 시를 꼬불쳐 둔 건 아니냐고··· ···. 시를 안 쓰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시 따위! p48
시 몇 편 꼬불쳐두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사랑해 뛰는 심장이 / 그리워 저린 마음이
아파서 흘린 눈물이 / 미처 뱉지 못한 말들과 옮기지 못한 발걸음 발걸음이 전부 시인데··· ···.
한 일주일 바깥을 떠돌다 왔더니 안쪽의 병이 더 깊어져 있구나. 안쪽이라 여기던 것들이 바깥이었구나. p50
인도 !
2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