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고 오랜만에 느끼고 오랜만에 끄적였다.
1편에서 계속.
산길 걷다가 갑자기 맞는 소나기는 연애처럼 난데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좋아하였다. 점점이 옷자락에 묻은 빗방울이 마르지 않았으면 하였다. p61
저는 겨울비에 옷이 다 젖었어요.
오는 걸 알았지만 우산을 챙기지 않아 맞는 겨울비가 이별처럼 다가와서 저는 많이 슬펐어요.
그래도, 언젠간 마르는거 맞죠?
면인지 울인지 고어텍슨지 걸리는 시간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한동안은 옷 모서리로 한방울 한방울 땅바닥을 적시다가 언젠간 바삭바삭하게 / 마르는거 맞죠?
손가락 사이며 발등이 가끔 가렵다. 가려움이 내 몸에 보증금도 없이 세 들었다. 그리고는 막 긁어달라고 보챈다. 내가 긁어줘야 시원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일이냐. p73
긁어주고싶다. 그와 담판 짓지 못한 답답한 그녀 마음 벅벅 긁어대고싶다.
나 잠들었을 때 내 꿈의 머리맡에 눈이 내려서 좋았는데 아침 출근길 미끄러지지 말라고 햇살이 내려와서 좋아라. p99
나였다면, 내 꿈에 눈이 내리다가
그 아침에 햇살이 내렸다면
나는 아마 펑펑 울었겠지
그 좋아하는 눈 맞으러 뛰어나가
만져도보고 누워도보고
뭉쳐다 괜히 허공에 던져도 보고
나 닮은 눈사람도 하나 만드는 일을,
꿈에서조차 미루고 미루다
눈 녹은, 혹은 온 적 조차 없는 아침을 마주하고
나는 아마 펑펑 울겠지
눈이 하도나 예쁘게 예쁘게 내려오시어 학생들이 나는 바라보지 않고 강의실 창밖만 내다본다. 그냥 놔두기로 한다. 책 붙잡고 있는 내가 잘못이지. 젊은것들 마음이야 오죽하려고. p111
예쁘게 예쁘게 내리는 눈만큼 훌륭한 시 선생님이 있나요. 학생들은 그 날 내리는 눈을 쳐다보며, 저마다 가슴 속에 그 눈보다도 갑절은 예쁜 시 한 편씩을 썼을 거에요.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지 단풍한테 배우자. 또 나는 누구에게 물들어가야 하는지 단풍선생한테 배우자. p166
그 단풍잎이 낙엽되어 떨어지면
어떻게 떨어져야 아프지 않은지
어떻게 떨어져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리도 바싹 말라있는지
어떻게 떨어지면 그렇게 바람부는대로 흘러다닐 수 있는지를 배우고 싶다.
여보시오 낙엽선생
나무들이 빗소리를 경배하고 있다. 장엄한 미사가 진행 중이다. p172
아멘.
쌀쌀하다, 싸늘하다, 춥다, 한파, 혹한··· ···. 일기예보에는 추위를 표현하는 이런 말들이 순서도 강약도 없이 뒤섞여 있다. 어쩌라는 말인가. p218
그정도면 양반이지. 최소한 일맥으로 상통하는 표현들이니.
좋다, 밉다, 홀가분, 그리움, 사랑, 슬픔 ··· ···.
내 마음에는 이런 것들이 한 날 한시에 한 사람에게 뒤섞여 있는데,
이건 정말 어쩌라는 말인가.
술을 마시고 나왔다. 머리에 비를 맞았다. 이유 없이 좋았다. p235
늘상 두 눈에서만 흐르던게
술 마신 밤이면, 머리에서도 흐르고 어깨에서도 흐르고, 이내 온 몸에서 흐를테니까.
그러다 고개 한 번 돌려보면
온세상이 함께 흘려주고 있을테니까.
없기는, 이유가 있지.
공감의 힘 !
사람은 떠나고 짐승만 남았다. p244
사랑은 떠나고 미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