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8. ~SantiagoDeCompostela2

모든 이들의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by 아레카야자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선크림을 발랐다. 그새 굳은 다리를 풀었다. 가방을 메고 허리끈을 졸랐다. 남은 거리는 20km가 살짝 안 되는 거리. 식사를 마친 시각이 2시가 좀 넘은 시간. 6시 정도엔 도착할 거라는 게 우리의 계산이었다. 내가 “자 오늘은 다들 늦잠 자고 이제 출발하는 거야. 오늘은 20km도 안 되는 거리니 금방이다”며 최면을 걸었다. 상민이 “아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출발하자마자 좀 힘드네”하며 받았다. 서로에게 “이미 숙소 예약도 했고 급할 거 없으니 이젠 정말 제발 천천히 좀 가자”고 애원했다. 서로가 서로를 자제시켰다. 1km에 10분 페이스로 걸었다. 이 속도가 언제부터 ‘천천히’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종종거리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오르막이 나오자 또 현준이 자신은 못 따라갈 거라며 속도를 늦추는데 상민이 현준의 가방을 뒤에서 밀었다. “오르막은 고개를 박고 땅만 보면서 앞으로 넘어지기 전에 발을 디디면 돼”. 개간지였다.



10km 정도를 가 라바코야 마을의 바에서 쉬었다. 모두가 이온음료를 두 캔씩, 나는 거기에 콜라까지 총 세 캔을 시켜 앉았다. 사람이 다섯인데 테이블에 캔은 두 자릿수였다. 신발을 벗거나 끈을 풀고 발의 열기를 식혔다. 가필드 같은 뚱냥이가 느긋하게 드러누워있어 다가가 귀찮게 굴다가 팔찌를 뜯겼다. 진도 똑같은 짓을 하다 팔뚝을 긁혀 피가 났다. 다들 지칠 대로 지쳤으나 멈추기엔 늦었다. 모두 출발일은 다르지만 각자 한 달 가까이 걷고 걸어 향한 목적지가 목전이었다. 700km대부터 봐온 표지석의 숫자가 어느덧 한 자릿수였다. 각자 물통에 물을 채우고 다시 출발.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산티아고까지 4km를 남겨둔 지점에 뜬겁새로 돌하르방이 있다. 제주 올레길과 자매결연을 맺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도 올레길을 모두 종주하면 완주 증명서와는 별개로 메달을 준다나 뭐라나. 아무튼 코리안 그룹인 우리는 돌하르방을 보고 가기로 했다. 근데 웃긴 건 이 돌하르방이 순례길 길가에 있는 게 아니라, 길을 벗어나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가야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몬테 도 고소 마을에 도착해 위치를 검색해 보고 들어가려고 하자 진과 현준은 볼 생각 없다며 쉬고 있겠다고 했다. 이미 오늘 하루 50km 가까이 걸은 시점이었다. 나와 수빈, 상민은 돌하르방을 찾아가는데, 이노무 하르방이 나오질 앉았다. 게다가 길은 또 약간의 오르막. 더 가야 되나? 더? 더? 하다 보니 저만치에 돌하르방 대가리가 빼꼼 보였다. 씩씩거리며 좀 더 걸었더니 짝을 이룬 돌하르방과 파란색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도장도 없었다. 셋이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는데 짜증이 치밀었다. “아니 세울 거면 좀 길가에 세워놔야 순례자들의 접근성도 좋고 외국인들한테 관심도 사고 하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돌하르방 모양으로 도장도 하나 만들어놓으면 얼마나 좋아. 아무튼간 해놓고도 욕을 먹어요”는 내가 한 말이다. 툴툴 거리는 나를 보며 넷은 “지호 인성 터졌다”며 웃었다. 나는 “순례길이 내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던데 끄트머리 와서 내 인성머리를 끄집어내네!”하고 받았다.



남은 거리는 4km, 현재 시각은 5시 반이 넘었다. 문제는 순례자 사무소가 7시까지만 운영을 한다는 거였는데, 완주증이야 내일 받아도 되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기왕이면 오늘 받는 게 좋겠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돌하르방으로 상한 기분 채 치유할 새도 없이 다시 길을 나섰다. 다들 지치고 힘들었지만 이제 정말 코앞. 얼마 안 가 ‘Santiago de Compostela’가 갖가지 스티커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벽이 보였다. 우리는 멈출 수도 없어 계속 걸어가며 휴대폰의 손떨방을 믿고 셔터를 누르고 지나갔다. 몇십 미터 뒤 이번엔 건너편에 같은 글자가 무지개 색 배경에 쓰여있는 간판이 있어 내가 대표로 건너가 사진을 찍어왔다. 드디어 그곳이었다. 어떤 경로로 걷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전 세계 모든 순례자가 향하는 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시는 매우 컸다. 간판을 보고 설렜던 마음도 잠시. 아직도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는 2km가 넘게 남아있었다. 우리 다섯은 50km를 넘게 걸은 몸. 안 쑤시는 곳이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부풀어 있었다. 흥분된 마음이 몸의 고통을 잊게 한 건지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주위 건물들이 높아 그런지 대성당의 첨탑은 보이질 않았다. 남은 거리가 이제는 킬로미터가 아닌 미터 단위가 됐을 때 내리막이 나왔다. 내가 괜히 뛰어 내려갔더니 다들 “아 왜 저래 진짜 멈춰!”하며 말렸다. 바 야외 석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고 나는 덩실덩실 그 옆을 지나갔다. 곡이 딱 끝나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시점이었는데 상민은 고생한 우리에게 쳐주는 박수로 받아들이자고 했다. 도시에만 들어서면 보이는 사람들마다 순례자를 반겨주고 박수 쳐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에겐 너무나 의미 있는 순간과 장소가 현지인들에게는 그저 일상인지라 누구 하나 환호해 주는 사람이 없어 섭섭하던 차였다.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백파이프 연주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대성당 광장으로 들어가는 터널이 보였다. 왔구나, 저곳이구나.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백파이프 연주자를 지나 터널을 통과하자 대성당의 웅장한 외관이 보였다. 각자 다른 이유로 각자 다른 날짜에 출발해 결국 다 함께 도착한 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나는 “와아!” 탄성을 질렀다. 진과 수빈은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 모두 대성당이 잘 보이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메고 있던 가방을 등판 삼아 그대로 드러누웠다. 함께 도착한 다섯이 오늘 실제 걸은 거리는 54km가 넘었다. 7만 보가 넘는 거리. 시간이 늦어 다른 순례자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백인 순례자가 우리를 보고 박수 쳐주며 축하해 줬다. 상민의 휴대폰을 받아 드러누워있는 우리의 모습을 찍어줬다. 10분 정도를 그렇게 누워있다 6시 40분이 돼 순례자 사무소로 향해 완주 증명서를 받았다. 직원에게 “우리 오늘 54km를 걸어왔어!” 하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급히 귀국해야 됐던 거야?” 묻길래 “아니, 그냥 오늘 오고 싶었어” 했다. 축하한다며 이제 편한 시간을 보내라고 격려해 줬다. 감동이나 벅찬 감정보다는 후련함과 성취감, 환희와 안도감 같은 것들이 도드라졌다. 우리는 다시 대성당으로 돌아와 서로의 사진을 남겨줬다.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는 현준의 등을 떠밀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찍으라고 했다.



우리는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방 두 개에 침대가 두 개씩 들어있고 거실의 소파가 침대로 변하는 구조. 신발과 양말을 벗으니 모두 발 꼴이 가관이었다. 한 번 앉으니 휴대폰을 집으러 일어설 힘도 없었다. 화장실이 하나인 탓에 다섯 명이 한 명씩 돌아가며 씻어야 했지만 이제 급할 건 없었다. 한 명씩 샤워 후에 사람 꼴을 되찾고 좋은 샴푸 향을 풍기며 나왔다. 옷을 한꺼번에 세탁기에 넣어 돌려놓고 다 같이 중국집으로 향했다. 평이 좋은 한식당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 월요일이 휴무였다. 중식당은 번화가 한복판에 있어 사람이 많았다. 웨이팅이 있어 그 사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날짜 개념이 없어져 며칠 전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서비스 샌드위치를 주셨던 사장님이 있던 곳과 같은 가게였는데 맛이 더 다양하고 식감이 더 쫀득했다. 중식당에도 자리가 나 들어가 먹는데 내부가 더운 데다 하루 종일 더위를 먹어 끊임없이 땀이 뻘뻘 났다. 상민은 “도착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힘들다”고 했다.



먹고 나오니 구름이 핑크빛을 머금은 시간이 돼있었다. 일출은 매일같이 봐왔지만 스페인의 늦은 일몰에는 익숙지 않은 순례자들이었다. 떠오른 각도대로 떨어질 텐데도 일출의 빛깔과 일몰의 빛깔은 묘하게 그 느낌이 달랐다. 순례길을 완주하고 씻고 나와 배불리 저녁을 먹었을 때의 가뿐함. 몸은 전에 없이 지쳤지만 마음은 정말 상쾌했다. 슬금슬금 대성당 쪽으로 가보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성당 근처 노천 식당에 공연이 있었는데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모두가 구경하며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공연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서 박수치고 환호하다 맥주가 고파져 다른 바에 앉아 맥주 한 잔씩을 했다. 다른 곳들은 산 후안 축일에 비해 조용해 다시 공연 중인 바로 돌아왔다. 나는 하루 종일 흘린 땀 때문인지 맥주 한 잔에 헤롱헤롱 어지러웠다. 공연은 길어지며 점점 흥이 오르는 연주와 노래를 하고 진, 수빈, 현준, 상민은 맥주를 더 마시며 날뛰는데 나는 조금만 뛰어도 어지러워 앉아있다 서있다를 반복했다. 입이 계속 쩝쩝 말라 연거푸 물을 마셨다. ‘아이씨, 이게 아닌데 나도 놀아야 되는데’ 싶었지만 당최 깡총거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시간이 좀 지나 괜찮아질 무렵 공연은 끝나고 산 후안 축일을 기념하는 세레모니가 있었다. 연금술사 같은 복장의 한 명이 큰 팟에 불을 붙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주문을 외며 술을 만들었다. 수십 개의 작은 잔에 나눠 따르자 모두 다가가 한 잔씩 마셨다. 주변의 현지인 할머니가 액운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를 가나 이런 의식은 대강 비슷한 맥락인가 보다.



그렇게 한 시를 조금 넘겨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 같이 묵는 숙소인데 우리는 뒤풀이 겸 술을 마실 상태가 아니었다. 재빨리 빨래를 널고 세면세족을 한 뒤 침대로 빨려 들어가 기절했다. 막내인 현준이 거실 소파침대에서 자겠다고 하길래 그러지 말고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가 내가 걸렸다. 거실이라 TV를 켜놓고 잘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유튜브로 마음에 드는 플리를 틀어놓고 나도 기절했다. 짧은 28일이었고,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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