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

이태원에서 너를 마주쳤던 날

by 아레카야자




그는 가만히 열차 시간표를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시간표 오기는 오는 걸까 기차가 오지 않는다면. 멀리서 기차가 보이는 듯 했지만 그것은 기다려도 가까이로 그러니까 역으로 그에게로 오지 않고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왜 안오지 이상하다 하면서도 오기를 바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올까 온다면 나는 올라타야 하나 올라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이윽고 열차는 그 앞에 섰는데 느린 걸음으로 열차가 다가와 멈춘 것인지 그가 걸어가 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차는 어느새 기차라면 그런 소리를 내야만 할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멈췄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왜인지 그는 역시나 기차에 올라탈 수가 없었는데 다른 기차이기 때문은 아니었고 문이 열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표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고 표같은 건 애초에 필요가 없었으므르 문제가 될 것도 아닌데 그는 열차를 쳐다보고 멈춘 열차를 쳐다보고 멀뚱멀뚱 서있기만 했다.




승강장에 서있기는 했지만 시계를 자꾸만 자꾸만 들여다 보기는 했지만 기차를 기다린 것은 아니야 하면 거짓말 같았고 기다린 기차였지만 올라타질 못하겠네 올라탈 수가 없네 하면 그것은 슬펐다.




그렇다면 서있던 그도 기다린 기차도 답답하거나 슬퍼야 할텐데 그도 기차도 답답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기차가 멈췄을 잠시 간의 시간은 잠시가 아니라 영원만큼이나 오랜 시간 같았고 빠르게 출발했을 기차는 그러나 빠르지 않게 멀어지는 것 같아 그는 다시 열차를 따라 걸었다 아니 어쩌면 그와 열차를 뺀 나머지가 뒤로 자꾸만 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 그는 열차를 바라볼 때 만큼이나 무심하게 그렇게 보이게 열차에 올라탔는데 그 안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왠지 못 탈 곳에 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기차만은 놀라기는 했어도 못 태울 사람을 태운 것은 아니라는 표정으로 어쩐 일이야, 했다.




그는 기다렸어요 승강장에서요 계속 기다렸어요 했지만 자신이 들어도 그건 기다린 이유도 올라탄 이유도 되어주지 못했다.




기차는 갸우뚱 알 수가 없네 하더니 무심하게 역시 그렇게 보이게 바퀴를 굴렸다. 그러나 이제 그 바퀴는 역으로 들어올 때와 달리 조금 젖어보였는데 그것은 내 눈이 젖어있었던건가 그래서 그렇게 보였던 것 뿐일까 그는 나중에 그 일을 떠올려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 나는 그래서 그 기차에 올라탄 채 어디로 멀리멀리 먼 어디로 가게 되었었나 아니면 멀뚱히 쳐다보던 사람들의 표정을 젖은 기차의 바퀴를 견디지 못하고 내리게 되었었나 기억이 나질 않네 그랬다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승강장에 나가지도 기차를 기다리지도 타지도 말았어야 했을까 그는 생각한다.**







배경사진은 인도. 자이푸르와 아그라 사이 기찻길

*제목은 허수경 시인의 동명 시집에서 차용

**문체는 박솔뫼 소설에서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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