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이 속삭이는 저녁,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노을빛이 물든 산타모니카

by 애나 강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늘 따뜻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저녁 무렵의 산타모니카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노을이 서서히 바다 위로 내려앉는 순간, 붉은빛과 푸른빛이 섞여 파도 위에서 반짝였다. 그 빛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음속 깊은 곳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래된 걱정까지 바다가 가져가 주는 듯했다.

해변에는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와 함께 모래성을 쌓는 가족, 손을 잡고 웃으며 산책하는 연인들, 그리고 바다를 향해 그저 묵묵히 앉아 있는 이들까지. 모두의 얼굴에는 묘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같은 지구 위에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는 둘째 딸과 나란히 걷다가, 파도소리를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하며 웃음을 나눴다. 사진 속에는 바다보다 더 빛나는 우리의 웃음이 담겼다. 간판 하나에도, 길거리 풍경 하나에도 추억을 새기고 싶어 셔터를 눌렀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순간순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그날 바다에는 적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몇몇은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와 부딪치며 즐겁게 수영을 했다. 그 자유로운 모습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삶의 방식도, 행복의 모양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처음으로 둘째 딸과 함께한 미국 여행. 함께 웃고, 함께 걸으며, 바다의 노을을 바라본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풍경과 대화, 그리고 마음속의 울림은 너무나 알찼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딸에게 말했다.
“오늘 기억, 오래도록 간직하자.”
그 말에 딸이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이미 여행의 목적을 다 이룬 듯했다.

산타모니카의 노을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바다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잔잔히 파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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