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매년 실패하던 ‘가을 밤’의 기억

by 애나 강


가을이 오면 괜히 무얼 하나라도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중에서도 ‘밤’은 매년 나를 설레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마트에서 사 오는 밤들은 번번이 실패였다.

껍질만 반질반질 예쁘고, 정작 속은 휑하고 맛도 밍밍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꼭 밤을 삶아 먹고 싶어도, 막상 까보면 실망뿐이었다.
그래서 올해도 별 기대 없이 지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장 보러 갔다가 우연히 통통하게 알이 오른 밤 한망을 발견했다.
양파망처럼 생긴 주황색 그물망에 담겨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윤기가 돌고 알이 균일했다.
‘혹시 이번엔?’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장바구니에 담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 밤들을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었다.
물은 밤이 살짝 잠길 정도로 붓고, 센 불로 팔팔 끓이다가 약불로 줄였다.
집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밤 향기에, 괜히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한참을 삶아낸 뒤 찬물에 헹궈 과일칼로 반을 갈랐다.
그리고 티스푼으로 속을 파서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어머, 이게 바로 그 맛이네…"
입안에 달큰함이 퍼지고, 밤 특유의 포슬함이 살아 있었다.
뜨거울 때 한 점, 식으면서 한 점—온도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졌고
그 미묘한 차이가 또 재미있었다.

한망을 삶아놓았더니 나는 세 알, 남편도 세 알 먹고
나머지는 큰딸이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엄마, 요즘 이렇게 맛있는 밤 처음이야!”
딸은 이렇게 말하며 마지막 알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그리고 어제, 딸이 밤 두망을 더 사 들고 왔다.
“이럴 때 먹어야지! 안 그러면 또 못 먹는다니까~”
한망은 바로 삶고, 한망은 아직 부엌 한쪽에 고이 놓여 있다.

생각해보면, 삶아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티스푼으로 밤 하나씩 파먹는 그 풍경 자체가
올해 가을의 작은 행복이었던 것 같다.

내년에도 이런 완벽한 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올해의 가을은
맛있는 밤 덕분에 더 따뜻하고 더 풍성하게 기억될 듯하다.

있을 때 먹고, 있을 때 누리는 것.
그게 바로 가을이 주는 작은 지혜 아닐까.

올해의 ‘가을 밤’은,
참 달고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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