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던 설렘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집 근처 버스를 타고, 별다른 약속도 아닌 약속을 향해 돈암동으로 향하던 날들.
정해진 목적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일이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시간 자체가 설렘이었다.
버스 창가에 기대 앉아 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다 왔어?” 같은 짧은 말을 주고받던 순간조차 지금은 한 장면처럼 또렷하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우리는 늘 그곳으로 모였다.
돈암동은 약속의 장소였고, 우리의 작은 세계였다.
가장 먼저 향하던 곳은 떡볶이집이었다.
그곳은 조금 특별했다.
그저 떡볶이를 파는 곳이 아니라,
그 안에는 작은 DJ 박스가 있었다.
친구들과 종이에 신청곡을 적어 넣고
괜히 웃으며 DJ 박스 앞으로 가던 순간.
“이거 넣어볼까?”
“야, 읽히면 어떡해?”
그렇게 장난처럼 넣은 사연이
정말로 읽히던 순간이 있었다.
“○○중학교 친구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DJ 오빠의 목소리가 가게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서로를 보며 터져 나오던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야, 우리 거야!”
“진짜 읽어줬다!”
그때의 웃음은 이유가 단순해서 더 컸고,
순간은 짧았지만 그래서 더 선명했다.
떡볶이를 다 먹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 장소로 향했다.
돈가스 집이었다.
바삭한 돈가스와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던 함박스테이크.
지금 먹으면 평범할지도 모르는 그 맛이
그때는 왜 그렇게 특별했을까.
아마 음식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이
특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밥을 먹고 나와서는
옷가게들을 하나씩 둘러봤다.
“이거 어때?”
“야, 너한테 잘 어울린다.”
“근데 좀 비싸…”
결국 하나를 사기도 하고,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나오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늘 즐거웠다.
거울 앞에서 옷을 대보던 모습,
서로를 평가해주던 장난스러운 말들,
그리고 이유 없이 웃던 순간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돈이 많아서 행복했던 게 아니라
함께였기 때문에 행복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힘들었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시험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텐데,
사소한 다툼도 있었을 텐데,
기억은 언제나 좋은 쪽으로만 흐른다.
아마 사람의 마음은
지나간 시간을 조금은 따뜻하게 남겨두려는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가끔 문득, 아무 이유 없이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평범했던 하루들이
지금은 가장 특별한 기억이 되어 있다.
그때 우리는
지금보다 가진 것도 없었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더 많이 웃었고,
더 쉽게 행복해졌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처럼 아무 이유 없이 웃는 날은
조금 줄어든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조용히 웃어본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서 더 행복했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