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큰딸, 무거웠던 마음

by 애나 강

어릴 적 나는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는 간식도 챙겨주시고, 여름엔 더울까 부채질도 해주시던 따뜻한 기억이 남아 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까.

그 시절엔 집 밖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화장실에 다녀오신 뒤,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지셨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지금도 선명하다.

그날 이후 아빠는 중풍이라는 병과 싸워야 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병상에 계시다가,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빠가 병을 앓으시던 동안에도,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지켜내느라 한시도 쉴 수 없었다.

부업을 하고, 장사를 하고, 고된 하루하루를 견디시며

우리를 고등학교까지 모두 졸업시켜주셨다.

나는 그저 엄마를 돕고 싶었다.

그래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엔 바로 회사에 들어가 9년 가까이 일했다.

그동안 번 월급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엄마께 드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고,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 누가 엄마를 도와드릴까—그 걱정을 안고 시집을 갔다.

대신, 퇴직금 전부를 엄마께 드리고 나왔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입에서 "네가 결혼하고 나니 더 힘들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바위처럼 무거워졌다.

내가 결혼을 선택한 것이, 엄마에게 짐이 된 걸까.

그 이후로도 나는 가능한 한 도움을 드리고 있지만,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다는 걸 느낀다.


돌이켜보면,

나는 다른 또래 친구들처럼 예쁜 옷을 마음껏 사 입지도 못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 기억도 많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따뜻한 사람을 만나 지금은 소소하게나마 행복하게 살고 있다.


큰딸로서,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었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 무게가 가끔은 나를 눌렀지만,

나는 그 마음을 사랑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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