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하러 오시는 손님들을 보면 참 다양한 분들이 있다. 어떤 엄마가 자신의 차를 세차시키려고 아들을 데리고 왔다. 다정해 보이던 두 모자는 세차를 많이 안 해본 듯하다. 임시 오픈 할인 오백 원 이벤트를 엄마에게 설명해드렸다.
"아이고 복잡해서 잘 못 알아듣겠다. 야야!! 네가 한번 듣고 해 봐라. 오늘 너 데리고 온 거는 세차시키려고 그런 거니 잘 듣고 단디 해봐라!"
아들은 내 설명을 금세 이해하고 늠름하게 대답한다. "엄마, 이거 쉽다. 비켜봐라. 내가 반들반들하게 해 줄께"
장성한 아들의 당찬 태도에 엄마의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500원을 넣고 고압수로 예비 세척을 시작한다. 왼쪽 운전석 쪽에서부터 물을 뿌리기 시작해서 뒷좌석 문을 지나 트렁크 쪽으로 물을 뿌려가고 있다. 이때 엄마의 표정이 밝지 않다. "야야! 거 좀 빨리 몬 하나. 시간이 돈인데." 아들이 대답한다. "가만히 있어봐라. 내가 알아서 한다 아이가?"
아들의 물 뿌리는 속도는 별반 변화가 없다. 엄마가 또 한소리 한다. "좀 빨리해라. 시간 다간다!"
이 당찬 아들은 멘털이 강하다. 엄마가 가속페달을 밟지만 전혀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
"아, 이거 또 사건이 터지겠구나!"
살다 보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 때가 있고, 이런 불길함은 꼭 현실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속 터지던 엄마.. "일로 줘봐라!!" 엄마는 아들의 고압수 건을 홱 낚아챈 후 빠른 속도로 물을 뿌려나간다. 아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엄마 이제 물은 고마 됐다. 이제 거품 뿌리자" 하면서 폼건을 집어 든다. 폼건으로 차의 외부를 하얀 눈이 내린 듯이 덮어 씌운다.
엄마가 보기에도 좀 비싸 보였나 보다. "저것도 가격은 같지요?"
저 아들 또 한소리 더 듣겠구나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어머니, 저 폼건은 시간이 두배로 빨리 흘러요. 다른 세차장들은 보통 세배로 빨리 흐르는데, 우리 집은 좀 싼 편이에요. ㅠㅠ"
뭐 이 집 폼건이 다른 세차장보다 좀 싸다고 해서 엄마가 위안을 받을 상황이 아니다.
화가 난 엄마가 드디어 결심했다. "니 인자 나오너라. 내가 다 하께" 하면서 기계 조작 버튼을 거품솔로 바꾸고 밀대를 열심히 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또 아들을 나무란다. "어이구 야야! 니 때문에 돈을 두배로 쓰게 됐다 아이가!!" 엄마가 아들에게 화를 낸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가만히 두면 두 모자 싸움 나겠다 싶어 내가 나섰다. "저.. 어머니, 제가 여기 1500원 더 넣어 놓을 테니까 천천히 하세요!"
"아이고 고마워라." 인사를 하시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세차 과정 중에서 아직도 거품솔로 문지르는 단계이고, 세차 끝내려면 갈길이 먼데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아들은 아들대로 속상한지 뒷짐 지고 서있고, 남은 시간은 30초 남았다. "삐! 삐! 삐!" 시간 종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린다. 내게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의 꽈과과강! 꽈과과강! 소리처럼 크고 엄중하게 들린다.
만약, 세차 시 간이 끊기게 되고, 다시 시작 요금 2천 원을 넣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이 엄마와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어서 내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전이 임박한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엄마와 아들 사이를 중재해줄 사람은 이곳 세차장 주인인 나밖에 없다. 이 둘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나는 초침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섰다가 500원, 또 500원을 넣는다. 엄마는 속상함을 참으며 세차하느라, 아들은 억울함에 여전히 뒤돌아서 뒷짐만 지고 있어서, 내가 500씩을 넣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드디어 엄마가 물세차를 끝냈다. 다행히 기분은 많이 좋아진 듯해 보였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속이 불편해 보인다. 다가가서, 혹시 막내냐고 물어보았다. 맏이라고 대답한다.
"원래 엄마들은 맏이가 만문 하고 말을 좀 편하게 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엄마도 내가 맏이라고 아무 말이나 막 해요!"라며 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엄마에게는, "맏이라서 많이 믿음이 가고 편하지요?" 이렇게 물어봤지만, 엄마와 아들 둘 다 대답이 없다.
전면전은 막았지만, 아직 냉전 상태인가 보다. 할 수 없다. 내가 좀 더 노력하는 수밖에는..ㅠㅠ
마른 수건 두장을 양손에 들고 물기 제거를 위해 앞 유리창부터 열심히 닦았다. 그제야, 엄마가 말을 한다. "아이고,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나는 부처님 닮은 미소를 띤 채, 계속 물기 제거를 도왔다. 저쪽 한구석에서 계속 뒷짐 지고 있던 아들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수건으로 물기를 닦기 시작한다.
"휴~~* 마침내 이 두 모자의 냉전이 끝난 듯하다.
이제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둘이 세차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세차장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하다. 이런 일상의 작은 사건은 또 하나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고 이제는 퇴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