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색 카니발 차량을 타고 온 젊은 남녀 한쌍이 세차를 하고 있다. 남자가 물을 뿌리다가 여자에게 뿌려보라고 고압 건을 건네준다. 처음 해보는 듯 물 뿌리는 자세가 어색하다.
수압이 센지 처음엔 한 손으로 하다가 두 손으로 바꿔 잡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남자 쪽으로 물을 뿌린다. 남자가 깜짝 놀라서 뒤로 도망간다. 여자가 따라가며 남자 쪽으로 계속 물을 뿌린다. "이건 좀 해본 솜씨인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팔짝팔짝 뛰기도 하고 손을 서로 흔들어 가며 세차를 하고 있다. 저 젊은 연인의 행복감이 주위에 전달되고 싱싱한 에너지가 세차장 마당으로 퍼져간다.
저 둘은 사랑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면서 나까지도 편안한 기분이 든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마감 준비에 들어간다. 전기난로를 끄고, 경비 프로그램을 세팅하고, 작업복 외투를 벗고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나니 거의 퇴근 준비가 다 되었다. 이제 저쪽에서 실내 청소를 하고 있는 젊은 커플만 돌아가면 오늘의 일과가 끝난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20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차가 세차장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경찰이 웬일이지?"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든다. 지금 세차장 안에는 젊은 연인 둘 밖에 없는데, 경찰이 출동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혹시 사이좋은 그 커플이 세차하다가 말다툼이라도 했나?" 말다툼 따위로 경찰이 출동 할리는 없다. 나는 점점 더 나쁜 상황을 상상했다. "혹시 데이트 폭력?" 이런 불안함으로 순식간에 손에 땀이 나고 머리털이 쭈뼛해지는 듯하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세차장 마당으로 나가보니, 경찰차가 2번 세차기 안에 차를 세운다. 사복을 입은 건장한 아저씨 한 명이 먼지가 차에 눌어붙어 진짜로 더러운 경찰차에서 내린다. 목이 굵다. 목의 두께는 허리의 반! 머리가 짧다. 깍두기 스타일이다. 저 형사는 운동 좀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슨 일로 출동했는지 몰라 긴장이 된다.
차에서 내린 형사의 마스크 쓴 얼굴 사이로 알 수 없는 미소가 보이며 한마디 한다.
"지금 세차돼요?" 헉, 경찰차가 온 이유는 단지 세차가 목적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예 예 되고 말고요." 경찰이니까 공짜로 해드리려다가 혹시 뇌물제공 이런 걸로 나중에 문제가 될까 봐 그냥 보통 손님처럼 임시 오픈 할인 이벤트인 세차 시작 500원으로 설명을 드렸다. 이 경찰분 되게 반가워하신다.
마지막 손님이 가야 내가 퇴근을 빨리하겠다 싶어 세차를 도와드렸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고, 이 경찰분은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거의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는 경찰이 아니에요!"
큰일 났다.. ㅠㅠ "이건 또 무슨..?"
"혹시 내가 자신이 경찰이 아닌 걸 알게 되어서 무슨 나쁜 짓을 하려는 건 아닐까?"
젊은 연인들이 싸워서 경찰이 출동했을 거라는 처음의 불안보다 훨씬 훨씬 더 큰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경찰이 아니시면... 그럼 경찰차를 훔쳐 도주 중인.."
내 입으로 차마 '탈주범'이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던 그가 말했다.
"하하하!!!"
경찰인 듯 경찰 아닌, 탈주범인 듯 아닌듯한 그가 크게 웃더니, 자신은 경찰이 아니라 '마을 방범순찰대원'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이제야 그가 자신이 경찰이 아니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차를 자세히 보니 '경찰'이라고 적힌 것이 아니라 '순찰'이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차 아니고 순찰차
그 방범순찰대원은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은 경산 ㅇㅇ동 지구대 소속 방범순찰대원이며, 차가 너무너무 더럽다는 서장님의 말씀으로 인해 대원들 중 막내인 자신이 야밤에 세차를 하러 오게 되었으며, 지금 차량으로는 인원이 많이 못 타서 더 큰 카니발 차량으로 바꿀 계획이고, 운동은 유도를 했으며 (제가 맞췄음^^), 방범순찰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마지막 손님과 재미있게 세차를 끝내고 집으로 갈렸는데, 세차장을 빠져나가던 순찰차가 멈춘다. "또 무슨 일이지?" 이 순찰차는 오늘 여러 번 나를 긴장시킨다. 차 문이 박력 있게 벌컥 열리더니, 차에서 내린다. 휴대폰을 꺼낸다.
"왜???"
"사장님, 저하고 사진 한번 찍읍시다. 여기 너무 서비스 좋고, 사장님도 좋아서 우리 방범대원들 단톡방에 올려서 여기로 세차하러 가라고 하려고요!"
이런 고마운 순찰대원이 다 있다니!!! ㅎㅎ
"사장님 이쪽으로 좀 더!! 가게 간판이 나와야지요!"
다정한 포즈로 가게 간판이 잘 나오게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휴대폰으로도 사진을 찍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선생님, 잠깐만요! 저도 인터넷에 올리게 사진 한 장만 찍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