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독수리 힘차게 날다

와라세차장 스토리 6

by 로제타

날씨 좋은 토요일 오후 동안에 고맙게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셨다, 당근 보고 처음 왔어요! 전단지 보고 왔어요! 와이프가 가보라 해서, 아들이 좋다 해서.. 등등 많은 이유로 이곳을 찾아주셨다.


저녁이 되면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뜸해질 때쯤 알림음이 울렸다. 나의 블로그 글에 댓글이 달렸다.


"자주 가는 세차장 말고, 오늘 한벜 가봐야겠어요 ㅋㅋ"


이거 또 촉이 온다. 오늘은 이 분과 뭔가 얽히겠구나!


우선 자주 가는 세차장이 있다는 걸로 봐서 이 분은 세차 마니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벜'이라는 오타 뒤에 숨겨진 그분의 강한 멘탈을 읽었다. 자신도 한벜이라는 글자가 오타인 것을 알았겠지만 굳이 '한번'이라는 옳은 글자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ㅋㅋ".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분 멘탈은 어제 내가 쓴 글(5편)에 등장하는 그 아들을 훨씬 뛰어넘는다. "쎄다!"


어둠속에서 흰색 소나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온다. 세차장 마당의 LED 조명을 받아 차에서 은은한 빛이 감돈다. "아!! 저분이겠구나!"


차는 세차실로 들어가 멈추고, 운전자가 내린다. 빠르게 스캔해 본다. 20대 후반, 키 178 정도의 마른 체형이다. 좁은 자동차 실내를 이리저리 날렵하게 움직이며 청소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유선형의 좋은 체형이다. 마스크 쓴 얼굴 위로 쌍꺼풀 없는 눈이 날카로워 보인다.


긴장한 나머지 내가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 그냥 어서 오세요 하면 될 것을, 그만 본심을 말해버렸다.


"차가 깨끗해서 세차 안 해도 되겠는데요!"


작고 날카로운 눈으로 그가 나를 쳐다봤다!


"제 눈엔 더럽습니다."라고 하면서 세차를 시작한다.


나는 옆에서 쭈뼛거리고 서서 그의 세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디 사세요?"라고 물어보니 경산이라 대답한다. "고향은요?"라고 물으니 세차하다 말고 나를 쳐다본다. 집중해서 세차하고 있는데 말 시켜서 화가 났나 슬며시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말이 많은 스타일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집은 마산이고요. 고등학교는 이만기, 강호동이 졸업한 마산상고가 이름을 바꾼 용마고이며, 동네에서 강호동 아빠가 막걸리 드시는 모습을 자주 봤으며, 등등


그는 세차를 마칠 때까지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계속된 그의 세차가 끝났다.


그의 노력만큼이나 그의 차는 빛나고 있었다. 차문 4개와 트렁크 문을 모두 완전히 열어젖히자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흰색 소나타는 완전 멋져 보였다. 마치 큰 독수리가 양 날개를 주욱 펴고 사냥감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웅장함이 느껴졌다.


"우와 멋진 독수리 같네요!"라고 말해주니 그는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세차에 열심인지를 말해주었다. 조금은 안타까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타지인 이곳에서 혼자 산다고 했다. "집에 가봐도 아무도 없어서 심심해요. 세차할 때는 집중하느라 외로운 줄도 몰라요!" 그의 숨겨두었던 깊은 얘기가 이어졌다. 자신은 원래 창원에서 FRP 소재로 소형 선박을 만드는 회사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리섬유가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마스크를 써도 목을 지나 폐에까지 도달하는지 기침이 많이 나더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월급은 조금 줄었지만 지금 다니는 경산의 플라스틱 사출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나이는 이십 대 후반이며 30만 원 정도 월세를 주고 원룸에 산다고 했다.


"조금씩 모으다 보면 나중에 집도 사고 결혼도 하게 되겠지요"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성실히 사는 괜찮은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로 같이 들어와서 차를 나눠 마시고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눈 후 그는 돌아갔다.


"심심하면 또 세차하러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의 흰색 소나타는 세차장을 빠져나갔다. 세차를 마친 그의 애마는 용맹스러운 독수리가 되어 자신의 주인을 태우고 거친 세상으로 달려갔다. 환하게 하얀빛을 뿜어내며 떠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의 독수리와 함께라면 일이든 연애든 그는 반드시 성공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떠나기 전, 그의 이야기를 써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다. 세차장 마감을 준비하느라 그 마지막 손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놓는 것을 깜박했다. 그의 독수리를 모두에게 보여주지 못해 아쉽기는 하다. 독수리 날아간 뒤 세차장 마당으로 어둠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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