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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Dec 01. 2021

무지성 깡패 팀장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얼마 전, 팀장에게 업무 개선안에 대해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고객들에게 지급받는 금액의 결제수단을 추가하자는 제안이었다. 팀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좋은 생각이고 준비를 잘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을만한 후배와 같이 틈틈이 시간을 내어 자료를 수집했다. 모처럼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던 것도 사실이다.


 과정을 준비하며 관련 부서들에 조언을 듣기로 했다. 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의견을 전달받고 이내 절망했다. 그들의 태도를 보면 이 조직이 왜 발전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산담당부서 팀장은 새로운 웹페이지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어, 협력사와의 연동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늘어놓았다. 회계담당부서 팀장은 나의 설명을 듣자마자 결사반대했다. 내가 준비 중인 이 제안 자체에 흠결은 없으나, 이 건으로 말미암아 유사한 요구가 늘어날 것이고 그것들에 대한 항의를 자신의 부서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즉 이 사람은 내가 제안한 건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점을 이유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부서가 난처해질 것을 이유로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아침부터 팀장이 부른다.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제안한 업무 개선안에 대해 반려한다는 말을 한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같이 자료를 준비했던 후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후배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어제 팀장님과 회계부서 팀장님 같이 술 드셨던 거 같은데요."


 모든 게 설명되는 후배의 말이었다.


 팀장과 회계팀장은 친한 사이다. 점심식사도 매일 같이 하니 내가 제안한 건에 대해서도 분명 사전에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둘이 술 마신 다음 날 내게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워 제안했던 개선안의 반려를 결코 말했다.






 나는 여전히 이곳,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 희망은 없다고 생각한다.


 악화가 양화를 너무 많이 구축했다. 더 이상 남아있는 양화를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나를 포함해 몇몇 뜻있는 직원들이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쓰레기 같은 선배들이 제발 퇴사해줬으면 하지만 그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팀장은 분명 나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반색하며 잘해보라는 말을 했다. 그랬던 사람이 자신이 곤란해질 것을 우려한 친한 사람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무지성이 만들어낸 참극이다.


 제안이 거절당해 화가 치밀었다.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감정은 이내 냉소적으로 식었다.


 한 사람의 괜찮은 제안이 무지성 깡패의 힘의 논리에 좌절당했다. 고객들의 편의가 향상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버렸다는 생각에 이제는 웃음만 나온다.


 깡패 천국.


 딱 그 정도의 조직이다.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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