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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Sep 15. 2022

부모님을 원망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양아치, 쓰레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회사를 다닐 때까지 내 방이 없었다. 옥탑방을 얻은 우리 가족은 그저 우리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었다. 그렇게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나와 동생 우리 다섯 식구는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무렵부터 옥탑방 생활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방은 없었지만 내 공간은 있었다. 옥탑방 옆 창고에 아버지께서 내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여길 가기 위해서는 낮은 옷장을 밟고 창을 넘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모양새가 참 우스웠다. 그게 불편한 줄도 모르고 옷장을 밟고 창을 넘나들며 내 공간에서 게임도 하고 잠도 잤었다.


사실 생각지도 못한 불편함은 따로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PC가 한 대 뿐이었다. PC는 부모님 방에 있었다. 나는 새벽에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싶었다. 작디작은 부모님 방구석에 놓인 PC에서 나는 밤새 마우스와 키보드를 누르며 스타크래프트를 했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숙면을 취할 수 없으셨다. 아버지는 새벽에 버럭 화를 내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나는 대들며 끝끝내 게임을 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채 몇 시간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을 가셨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원망했다. 어머니는 다 큰 자식에게 제대로 된 방 한 칸 마련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셨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사도 가지 않고 오래된 옥탑방에서 10년을 넘게 거주했을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그 시절 철없던 나는 진심으로 부모님을 원망했다는 것이다.




부모가 되고 남편이 돼서 우연찮게 비슷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득 저 시절 내가 부모님을 원망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안다. 나의 부모님은 지금도 자식을 위해 살고 계신다. 부모님의 지상 최대 과제는 당신들의 안위보다 자식들의 평안이다.


지금의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존재는 이 세계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도 우리 가족의 평온한 생활은 지켜주고 싶다. 그게 나의 꿈이자 유일한 소원이다.


결코 운명론자는 아니다. 우습게도 내가 이사를 결심해야 할 지금 시기에 내가 부모님을 원망했던 업보가 원인이 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 시절의 나는 양아치였고 쓰레기였다. 그 죗값으로 나는 저 당시의 부끄러운 내 모습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지금 처한 나의 상황도 저 시절 다 갚지 못한 죗값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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