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가 행복한 요즘
집순이인 나는,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으라는 말이 나쁘지 않게 들린다.
"너는 집에만 있니? 답답하지도 않니?"
라는 말 대신,
"집에 있어라~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라는 말이 나를 내심 편안하게 해 준다.
집에만 있냐는 말을 들으면 친구, 약속, 활동적이고 부지런함이 없다는 말을 내포하는 것 같아서 그런지, 성향이 그런 걸 어쩌라고 라는 반항심이 자연스레 생긴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아니라 빼앗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 이틀을 연달아 밖에 나간다면, 그다음 날 에너지를 빚을 내 당겨 쓰는 거나 다름없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만나는 사람에는 진짜 만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에서 스치는 사람들, 길거에서 스치는 사람들 모두가 포함된다. 그러니 이런 나에게는 나가는 것 자체가 일이다.
심지어 요즘엔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집집집마트집마트집 일 정도로 최소한의 외출만 하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는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들이 있긴 했다. 뭔가... 생산적이지 못한 사람이 된 기분?(집안에서 엄청 바쁘지만...)
하지만 창궐 후엔 이런 나의 '집순이' 성향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집에 있어야 하니깐 나의 이런 성향이 튀지 않아 보이고, 정당성이 부여된 기분 때문이다. 앞으로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또다시 창궐할 텐데, 그럴 때마다 나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후대에 까지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오버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마스크 쓰는 건 답답하지만
집에만 있는 것이 그리 힘들진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찰나의 외출에도 스트레스와 불쾌함은 두 배로 늘어났다.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들, 내 뒤에 가까이 붙여서 줄 서는 사람들, 여전히 길 한복판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마스크 없이 떼 지어 등산하는 사람들, 엘리베이터 탈 때 안 쓰는 사람들... 더 농축된 피로감이랄까.
확실히 나는 코로나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2018년에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줄 서기/ 개인 공간 (Personal space)에 관한 글을 끄적거린 게 있다.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서 핀란드인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인 공간이 가장 넓은 나라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4년 반 정도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했던 게 줄 서기였다. 그러다가 정말 다닥다닥 붙어 서있는 것을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들이 신기했다. 바로 뒤에서 크게 통화를 한다거나 재채기를 하는데 가리지 않고 한다거나... 해도 별로 서로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들...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으면 갑갑했다. 난 이런 게 싫어서 좀 떨어져서 서 있다 보면... 딱 한번 어떤 여자가 나한테 톡 쏘듯이 물은 적이 있었다.
줄 서신 거예요?
보면 모르나? 딱 봐도 매일 여기서 출근하는 여자라 내가 선 자리가 버스 기다리는 자리인걸 모를 리가 없는데 자신의 줄 서기 모습의 전형성과 달라져서 짜증이 났나... 아침이라 짜증이 났나...
네라고 짧게 대답하자 이렇게 서야 (한국에서는) 줄 서는 거야 라는 식으로 딱 붙어 선다... 이렇게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난 개인 공간이 한국인치고 넓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고,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기 때문에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카페에서 줄 서기 발자국을 보면서 내심 안도감 같은 것도 들지만, 코로나는 빨리 없어지면 좋겠다. 제발. 그리고 코로나가 사라지더라도 서로 조심했던 사람들의 습관도 계속 유지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