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난여름에 브런치 작가로 등단을 했다. 하루 만에 했다. 그때는 무엇보다도 내가 내 말을 풀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그 진심이 통한 것도 같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 십 년을 헤매고 있던 시점이었다. 긴 시간 동안 딱히 나의 빗장을 풀고 맘 편히 내놓을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국내는 타인의 지적 예술적 자산을 함부로 하는 일이 너무 당연했다. 대학에서 조차 그러니 밖은 더 그러하겠지. 몇 년 전 브런치도 나에게는 그래 보였다. 남의 글을 올리는 사이트인데 저작권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때는 보기 좋게 한방에 낙방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 시간이 우선순위에 올랐다. 배움의 운이 닿아 배운 건 많다. 그러나 내 놓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귀국해서 중병이 나서 십년을 건강관리를 해야했기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이젠 더 늦기 전에" 배운 것들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보니 브런치북이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면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다고 하니 안심도 된다.
브러치 북 두 개에 일단 내가 원하는 것들을 써 보았다. 지난 십 년 동안 내놓고 싶었지만 참아왔던 영어에 대한 체험과 나의 이론들을 쓴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도 많이 정리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 어떤 주제는 힘이 많이 들었지만, 내 것이 쌓여가는 모습이 뿌듯하기도 했다. 그것도 책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책 두 개를 내놓고 한동안 글을 쓰기 어려웠다.
"영어단어는 품사가 결정되어있지 않았어요" -- 이 한마디 말에 제이님이 번개 맞은 듯 화들짝 놀랐다. 그때까지 설명했던 영어습득이나 습득과정에 대한 고급정보가 다 무색할 지경이었다. "내가 아는 영어에 하자가 있었다니"라며 경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이님은 20대 후반 전직 공교육 선생님이었다.
그 순간 나에게도 번개가 하나치고 갔다. '다리'가 필요하겠구나. 제이님이 말한 대로라면,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초중고 내신영어, 대입 수능영어, 그리고 대학 때 취업영어까지 시험영어를 위해 학습만 해 왔다. 그런 뒤 자신의 학력이나 경력을 쌓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었을 때는 실제영어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 그때서야 영어를 제대로 해 볼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런 대한민국의 디지털 N세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1) 꼭 필요한 영어자리 지식이다. 동화책을 읽든 GRE를 공부하든 수준에 상관없이 실제 영어에 적용할 수 있는 영어자리의 지식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가 배에 있는 자리순서를 전한다. 2) 또한 잘못된 영어 학습습관을 아는 것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습관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영어이고이다. 이것이 있는 한 실제 영어하는데 방해가 된다
8번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8주 동안 가르쳐 준 자리를 모두 흡수하게 된다든지 잘못된 영어이고가 사라지게 된다는든지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갑자기 영어 귀가 뚫리고, 입이 트인다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에 대한 오해는 거의 다 풀린다. 죽어있던 지식들이 활성화된다. 영어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태도는 좀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영어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방향이 보일 거라고 했다.
문제는 디지털 N세대에게 영어자리 지식을 전달하는 형식에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지식 전달방식은 짧고 간결해야 한다. 어떤 지식이나 정보든 조각조각내서 핵심만 전달하고 빨리 끝내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에 대한 나의 관심은 매우 크고 오래되었다. 인문학을 하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전공을 바꿀 수 있던 것도 이때문이다. 불교로 말하면 방편설이다. 붇다가 대중의 수준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진리를 설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보기에 따라서 종교제도에서 신도확보를 위해 사용한 오래된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불교연구 끝에 그나마 신뢰를 두는 것이다. 불안만 자극하는 신흥종교 수준의 마케팅보다는 훨씬 낫다. 적어도 교육의 가치를 더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과정에는 늘 질문이 하나 따라다닌다. 형식이 간소화되면, 내용이 잘려나간다. 내용이 잘려나가면, 핵심도 잘려나갈 수 있다. 핵심을 살려두었다고 해도, 비약의 위험이 있다. 비약이 되면, 화석화된 콩알 지식으로 전락이 될 우려가 크다. 만약 이 모든 위험을 피해서 직관적으로 지식을 하나 전달했다고 하자.
디지털 N세대는 그 지식도 화면으로 돌려본다. '반복'학습이란 그럴싸한 명목이 있다. 음악 많이 듣는다고 작곡할 수 없고, 그림 많이 본다고 그림그릴 수 없듯이, 영어지식 반복해서 보고 듣는다고 말이 되는 것 아닐지언데. 사람들은 기존의 영어학습법을 싫어하면서 결국 또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는데!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란 미드의 한 에피소드로 기억한다. 거기 나온 유명한 여자 외과의사가 오리코스튬을 입고 어린아이들 교육을 시켜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코스튬은 내가 봐도 어른이, 그것도 유명세를 타는 의사가 입기에는 좀 거북스러웠다.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 결국 끝에 가서 아이들을 위해 그 코스튬을 입고 교육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는 줄거리다.
나도 영어자리에 대한 지식을 오리코스튬을 입고 전달할 수 있을까? 우선 두 가지만 실천하기로 했다. 앞으로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이제는 디지털 N세대를 포함한 독자를 위해서
1. 가능한 짧게 쓰자
2. 한 번에 정보 하나만
빨리 읽고 끝낼 수 있게! 이렇게 해서 영어를 편하게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또 쓰기로 했다. [영어자리, 영어를 편하게 해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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