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영어로 한다면
같은 꼰대를 만난 기쁨에,
완벽한 그녀의 의외의 인간미에
빙그레, 올라가는 입꼬리를 부여잡고
미간을 찌푸리는척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I’m listening.”(무슨일이세요)
"My team keeps missing the same things.
And I've been there.
(저희 직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전 왜그러는지 알겠거든요.)
I’m not trying to lecture them.
I want to help them build better work habits.
(야단치려는게 아니라,
일하는 법을 알려주고싶은건데)
But they take it as micromanaging.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받아들여요.)
귓등으로도 안듣는다... 이런 한국말 아세요?"
(…and it just goes straight over their heads.)
고상한 그 입술에서 갑자기 한국어로 귓등이라니
내게도 전무님같은 상사가 있었다면.
MZ라고 특별히 다를텐가,
우리 모두 MZ 였으나
이제는 묶여버린 뇌인건지 가슴인건지가
다시 자유롭고 싶어 물었다.
“Is it indifference?
Overconfidence?
A rejection of your approach?
Or just resistance?”
(직원들이 결과에 상관을 않는걸까요,
본인들의 방법이 옳다고 믿는걸까요,
전무님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는걸까요,
그냥 참견이 싫은걸까요.)
"'Why bother,' they'd say."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고 생각하는거 같아요.)
"And yet..."
(음.. 계속 실수를 반복하는데도요..?)
"Exactly.
(제말이 그말인데.)
Who do I even say this to?"
(아.. 진짜 이걸 어디가서 말하나요.)
40의 꼰대와 50의 꼰대가 마주앉아
자기들 끼리 심히 공감하는 사무실 안은
건물 히터 온도조절이 잘 안돼
답답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수 많은 말들을 쑤셔삼켜
속이 안좋아진 둘은
동시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약속없이 만난 두개의 한숨이 너무 컸는지
이심전심보다는 내새끼가 먼저인걸 기억해낸
최전무가 짙은 눈으로 호소했다.
"I’m against speaking badly about my team."
(저는.. 저희직원을 흉보고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