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통찰
우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하늘을
특별한 어딘가에서 보기를 동경하여,
큰 댓가를 지불하기 마다치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죽기 전 소원이며,
어떤이는 그곳의 하늘경치 한번 못본
자신의 인생을 개탄한다.
뷰가 좋은 볕이드는 사무실,
영구 조망권 아파트,
레스토랑의 창가자리,
도시마다 있는 스카이타워들,
몽마르뜨 언덕의 푸른하늘,
캐나다 밤하늘의 오로라.
나는
세상의 꼭대기에서 하늘이 보이는
그림같은 집을 살 돈이 없어서,
매일의 크고작은 기쁨을 잃고
은하수가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러
평창도 아니고 발리까지
창가석을 예약하고 떠나왔다.
밤낮으로 일만하고,
더 갖지 못해 지친 나를 이끌어
남편은 우붓의 지프차에 날 태웠다.
새벽이슬과 지프차의 연료가
내 콧속에 촉촉하게 들러붙어도
산 정상을 향한 어두운 숲길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였다.
정상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가이드가 갖다준 커피를 마시며
물끄러미,
물끄러미.
대자연은
멈추지 않는 머리를 비워버리는
신묘막측한 능력이 있다.
내 의지로 머리를 비우지 못해
나는 더 갖지 못해 안달인 돈을 들여
이 먼길을 떠나온건가.
매일 이걸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껴
얼마나 많은 일을 해 낼수 있을까.
식민지 노예도 안할 생각을 하는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별들도
열심히 빛나다가 이윽고 떠나고,
내게 출근을 강요하던 야속한 해가 왔다.
모든것을 숨겨 아름답게만 보였던 어둠을 몰아내고
빛이 드러낸 세상은 적나라했다.
산 중턱 판자 쪽문이 달린 화장실과,
듬성한 숲 속 폐 건물들.
셀카를 찍는 인플루언서들의
번진 화장과 엉킨 머리들 너머로
산책길 집앞의 하늘과,
볕드는 내 사무실 창 너머의 하늘과,
남편과의 출근길 한강에 맞닿은 하늘이 보였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하늘을
특별한 어딘가에서 보기를 동경하여,
큰 댓가를 지불하기 마다치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죽기 전 소원이며,
어떤이는 그곳의 하늘경치 한번 못본
자신의 인생을 개탄한다.
그러나 동일한 그 하늘은 내게도 주어졌다.
우리는 이미 다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