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해석할 자유

by 한걸음

‘어머, 차가 왜 이래?”


지인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주차장으로 배웅을 받던 길이었다. 얌전히 세워둔 승용차의 앞쪽 범퍼부분이 시원하게 긁혀 있었던 것.


아니, 언제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어떤 놈이 이렇게 하고 도망쳤어 하는 분노. 내가 왜 이걸 못 봤을까 하는 자책. 차를 평소에 잘 관리했어야지 하고 타박하는 가족에 대한 원망.


마음은 그렇게 짧은 순간에도 색깔을 각각 달리하며 가슴에 꽂힌다. 평소에도 좋지 않던 장이, 어느새 꼬인 것처럼 아파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인의 집에서 고양이와 장난을 치면서 낄낄대던 기쁨은 온데간데 없다. 사람의 감정이란 이렇게 작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나약한 것이었나.


부정적 감정에 꼬인 나의 장을 어찌 풀 수 있을까?


먼저 내가 주차한 자리가 정확히 잘 보이는 곳에 CCTV가 설치돼 있었어야 한다. 아니, 그 전에 내 차를 긁은 몰지각한 운전자가 먼저 나에게 전화해 거듭 사죄했었어야 한다. 아니, 고양이와 놀고 싶다며 지인집에 방문할 생각을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럴수도 있었고 그러지 말수도 있었던 것들을 골똘히 생각한다. 결국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일어나 원래의 자리를 바꿔야 한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부질없이 과거를 곱씹어 본다.


내 직업은 통역사다. 통역사는 영어로 interpreter인데, 직역하자면 interpret(해석)하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한 언어를 해석해서, 다른 언어로 바꾸어 말하는 사람.


통역사에게 적극적인 의미의 폭넓은 해석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말로 ‘산이 푸르다’라고 한 말을 영어로는 ‘강이 붉다’라고 통역하면 안 될 일이다. 산을 mountain(산)이라고 할지 hill(언덕)이라고 할지, 푸르다가 blue인지 green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이 붉다고 바꾸는 것은 통역사의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어가 아닌 인생을 해석할 때는 다르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넓은 의미의 ‘해석하는 사람’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산이 푸르다’에서부터 ‘산이 푸르러서 시원하구나’라고 해석할지 ‘산이 푸르르니 내 마음도 울적하다’라고 해석할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내 자신의 통역사이자 내 인생의 해설사이다. 먼 여행길을 떠나는 데 보고 듣는 관광지를 해설해줄 가이드를 고른다고 생각해보자. 그것도 1주, 1달짜리 여행이 아니라 몇십년짜리 코스라면? 웃는 얼굴의 해설사를 따라가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늘 찌푸린 얼굴의 해설사를 따라간다면 어딜 가나 맘에 차는게 없는 불편한 여행길이 될 것이다.


억울한 주차사고 뺑소니의 피해자로 마감된 하루. 장을 꼬이게 만들었던 해석을 다시 뒤집어 본다.


그래도 사고 부위가 긁혔을 뿐 움푹 패이진 않았다. 내가 차 안에 타고 있다가 다친 사고도 아니다. 밤 9시 뉴스만 틀어도 매일 밤 나오는 게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죽고 다친 소식 아니었나. 최소한 5년 넘게 운전하고 다니면서 크게 다친 적도 남을 다치게 한 적도 없다.


그 뿐인가? 자동차는 신발처럼 나를 여기저기 편리하게 데려다 주는 존재이지 한 곳에 조용히 모셔두는 전시품이 아니다. 새하얀 새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면 언젠가는 때가 묻고 까진 곳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운동화로서 가치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만큼 운동화 주인을 좋은 곳에 잘 모시고 다녔다는 뜻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오늘 억울하게 뺑소니 주차사고를 당했다’

이 말을 다시 이렇게 뒤집어 해석해본다.

‘5년간 큰 사고 없이 자동차를 타고 좋은 곳에 편하게 잘 다녔다.’


사실에 어긋나는 말은 하나도 없다. 자동차와 내 생활을 둘러싼 수많은 사실 중에 더 크고 중요한 사실들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이렇게 통증을 느끼던 배가 조금씩 가라 앉는다.


직업으로서의 통역사 노릇을 할 때는 원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을 해석하는 통역사에게 주어진 자유는 조금 더 누려봐도 괜찮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일어나 나를 위해 자리를 바꾸길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세상의 무게보다는 내 마음의 무게가 가벼우니, 생각을 돌이켜 내 마음이 자유로이 가벼워지도록 세상을 해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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