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by 한걸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쇼생크 탈출’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사춘기의 반항기가 단단히 들어있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답답한 교실에 모여 공부만 해야 하는 학교에 갇힌 어린 영혼에 쏙 들어온 영화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감된 주인공 앤디는 부패한 교도소장의 돈세탁을 해주며 탈옥할 그 날을 조용히 준비한다. 조그만 조각용 망치로 수년간 교도소 벽을 파내어 마침내 교도소를 탈출하던 날의 환희. 이 놈의 답답한 학교만 벗어나면, 공부라는 짐과 갑갑한 교복을 벗어 던지는 그 날이 오면 나도 저렇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부패혐의의 압박을 못 이기고 권총 자살을 한 교도소장,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되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해안가를 달리는 앤디의 대비가 그리 통쾌할 수 없었다.


잊고 있었던 그 영화가 다시 떠오른 건 20대 중반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3년쯤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하러 떠나려 하던 시점이었다.


평생을 복역하고 마침내 흰머리에 굽은 허리로 출소하게 된 브룩스 영감이 문득 떠올랐다. 젊은 시절 저지른 큰 실수의 대가로 평생의 시간을 보낸 교도소. 그리도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이었건만 마침내 그 곳을 떠나게 되었을 때 브룩스는 쇼생크를 탈출하기 싫어 인질소동을 벌인다. 평생의 시간을 보낸 곳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라 나의 집이고 고향이 되어버렸고, 교도소 동료들이 내가 아는 유일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돈이 필요해 잠시 스쳐가는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학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사직서를 내고 지겨웠던 야근의 현장을 떠나던 날, 나는 브룩스 영감처럼 머뭇거리고 있었다. 지방에서 빈털터리에 아는 이 하나 없이 상경한 나에게, 회사는 교도소처럼 나를 얽어 매는 곳이기도 했지만 하루 두세 끼니를 같이 먹어가며 일상의 웃음과 야근의 한숨을 같이 하던 동료들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가석방 후 취업한 식료품점에서도 사장의 허락없이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던 브룩스처럼, 26살의 나도 갑자기 주어진 대낮의 햇살과 스스로 책임져야 할 광활한 자유의 무게에 휘청거렸다.


불혹이라지만 여전히 유혹에 흔들리는 나이가 되어, 나는 다시 한번 쇼생크 탈출을 떠올렸다. 이번에 떠오른 것은 스스로 자유를 쟁취한 주인공 앤디도,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던 브룩스 영감도 아닌, 쇼생크 교도소의 소장이었다. 높은 교도소 담벽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내가 꿈꾸던 자유의 정반대 편에 서 있던 억압의 상징이었다. 나는 교도소장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고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앤디가 되고 싶었다.


나를 구속하는 것들을 피해서, 대도시로, 외국으로 떠났다. 때로는 더 큰 조직으로, 더 다정한 사람에게로, 더 값져 보이는 것들에게로 도망쳤다. 억압으로부터 도망치고 자유의 꼬리를 붙잡으려 긴 시간을 보내다 문득 돌아보니 나는 어느새 마흔이 되어 있었다.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를 얽어 매온 것은 학교도, 직장도, 세상도 아니었다. 좋은 대학만 가면, 대학원 학위만 따면, 더 좋은 곳에 취직만 하면, 더 다정한 사람만 찾으면, 돈만 많이 모으면…. 그렇게 꾹 참고 교도소 벽에 조금씩 구멍을 내어 탈출한 길의 끝에는 교도소장이 서있었다. 거울 속 나의 얼굴을 하고…


내 마음의 감옥 안에서 나는 욕심의 기준에 따라 세상에 내 맘대로 되니, 안되니 하면서 괴로움을 만들어왔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세상은 나를 억압한 적이 없다. 그저 그 모습 그대로 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 안에서 저건 좋고 나쁘다고 따지고는, 좋은 것만 가지겠다고 나 자신을 닥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애초에 감옥에 갇힌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진짜 자유는 세상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나 자신의 욕심과 감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제는 내 안의 교도소장을 잘 달래어 스스로 쌓아올린 쇼생크의 벽돌을 하나씩 허물어가는 연습을 할 때다. 나를 꼭 닮은 교도소장과 어깨동무를 하고 보니, 마흔을 왜 불혹이라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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