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텃밭

by 한걸음

올 봄, 예기치 않게 땅이 생겼다. 장난삼아 신청한 주말텃밭 분양에 덜컥 당첨된 것이다.


시청에서는 단돈 3만원에 일년간 농사지을 땅 여섯 평을 선뜻 내어줬다. 아파트가 스무 평이니 서른 평이니 하는 단위에만 익숙해져 있던 속물적 현대인에게 여섯 평은 꽤 가뿐하게 들렸다. 분양 받은 땅에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스무 평 남짓한 집은 좁게만 느껴지더니 내 손으로 직접 갈아야 할 땅 여섯 평은 광활하기 그지없었다.


4월 초부터 경작하도록 개방되었지만 차일피일 미뤘더니 시간만 흘러갔다. 어린이날 연휴 때가 되어서야 밀린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텃밭을 갈러 갔다. 아파트 경비실에서 빌린 낡은 삽 하나가 동원된 도구의 전부였다.


그 날 따라 구름 한 점 없이 내리쬐는 오월 볕은 사무실 에어컨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겐 따갑기만 했다. 엉성한 손놀림으로 여섯 평 땅뙈기를 갈아 엎으며 소를 생각했다. 옛 사람들이 소에게 쟁기를 매어 밭갈기를 시킨 이유가 있었구나. 이렇게 고된 일을 시키고는 잡아 먹기까지 했었구나, 미안해라. 나는 소도 없고 쟁기도 없으니 손에 굳은살만 박혀갔다.


힘들게 땅을 갈고 나니 오기가 났다. 토마토, 고추, 파프리카와 싹이나 못 먹게 된 감자까지 옹기종기 심었다. 그깟 야채 사먹고 말지 무슨 재미를 보겠다고 땅을 덜컥 받아 이 고생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조그만 녹색 녀석들은 나를 자꾸 불러들였다. 사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 컴퓨터 자판이나 두드리다가도 싹이 얼마나 고개를 내밀었나 궁금했다. 퇴근길에는 블라우스에 구두 차림으로 텃밭을 기웃거렸다. 잎새 사이로 초록 끄트머리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얼마 후엔 세상에서 제일 작은 토마토가 열려 있었다. 가게에서 종종 보던 아기 신발도 이보다 귀여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이 신비로운 녀석들에게 연신 물을 퍼날랐다.


고작 여섯 평을 경작하는 도시 농부이지만, 마트에서 장보는 일이 달라졌다. 깻잎은 세 묶음 천원, 방울 토마토는 한 팩에 3천원. 그저 카드 영수증에 찍힌 숫자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던 채소들이었다. 그러나 호미로 잡초를 뽑다가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마트 진열대의 채소를 집어들 때는 얘기가 달라졌다.


‘우리 텃밭에도 토마토가 이거 반의 반만하게 자랐는데.’

‘아니, 이렇게 힘들게 키워서 겨우 이 가격에 파시면 수지가 맞나?’


아, 그렇다. 나는 채소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다시 태어난 거였다. 땡볕에 밭을 갈고,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고… 손에 흙을 묻혀 가며 무언가를 키워본 사람은 흙에서 자라난 생명들을 다시는 무심하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오이를 비닐 랩을 뒤집어 쓰고 있는 1500원짜리 상품으로만 보던 예전의 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오이가 달려있었을 줄기의 까칠한 촉감. 그 줄기가 뿌리박고 있었을 흙의 냄새가 느껴졌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경험이 없어서 생기는 무심함이, 조금의 경험으로도 생생한 관심과 애정으로 바뀌는 것. 다른 생산자에게는 존경심이, 그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에게는 경외심이 드는 것.


돌아보니 온라인에서도 텃밭 비슷한 것을 가진 적이 있었다. 누구나 마음껏 글을 써도 좋다는 사이버 공간이었다. 글이라면 평생 양껏 눈에 채워오지 않았었나. 엄마가 외판원의 꼬임에 넘어가 사들인 동화전집을 질리도록 읽은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결국 화장실에 앉아 읽을 것이 없으면 샴푸 뒷면 설명서라도 읽어보곤 하는 활자 중독자로 자라났다.


그만큼 책과 글을 끼고 살았으니 가상공간에 글 몇 줄 써내려 가는 것이 어려울 리 없었다. 그러나 하얀 화면에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커서를 오래도록 마주하고서야 알았다. 텃밭의 농작물처럼, 글도 소비하는 것과 생산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것을.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혀가며 한 글자씩 써내려가며 알게 되었다. 서점에서 시시해 보여 지나쳤던 책들도 누군가의 피와 땀이라는 것을. 무미건조한 가격표를 달고 진열대에 앉아 있는 채소들도 한 때 축축한 흙 속에서 여름 볕을 견디며 자라났듯, 내가 그렇게 무심코 읽던 문장들도 누군가는 단 한 줄을 쓰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웠으리라는 것을.


평생 마트에서 산 채소를 먹던 도시인은 농부가 되고서야 채소들의 고향을 상상할 힘을 가지게 되었다. 평생 남의 글을 먹어치우듯 읽어내던 활자 중독자는 커서가 깜빡이는 백지를 수없이 마주하고서야 활자의 고향을 알게 되었다. 그 많은 글자들이 수없이 쓰고 지우고 또 써내려 간 이들의 고뇌와 수고로 태어났음을.


한 번 생산자가 된 사람은 다시는 소비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없다. 오늘도 서점을 들어서는 활자 농부는 먼저 길을 간 이들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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