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아니었던 편(上)

술맛 좋아지는 취미

by 기미닉

홀로 술 마시며 책 보기가 취미다.


취미 한 번 고상하다는 고마운 오해는 안 하셔도 된다.

고상은 무슨...구차한 취미다.


언제부터인가 술병 혹은 캔 뚜껑을 열기 전에 핑계를 댄다.

‘나쁜 습관 하나쯤 있으면 어때. 두 시간 넘게 자전거 타고 왔잖아. 독서도 하잖아. 좋은 거 두 개에 나쁜 거 하나. +1이라니까?’

이러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해진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빈도를 줄여야지 싶었다. 그런데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일수록 안 하기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좋게만 여긴 야외 사이클링이 나쁜 버릇의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가 될 줄이야.


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노상 술 생각을 하고 살진 않는다. 아니, 보통 그렇듯 평소엔 별 생각이 없다. 남들처럼(은 아닐 수도.)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오후 10시 40분, 11시 1분에 알람이 울린다. ‘자전거 타러 갈 시간이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뭉그적대며 옷을 갈아입은 뒤 현관문을 나선다.


ㅠㅠ (2).JPG 자전거를 타며 보는 야경이 너무 좋아 필름 카메라로도 야경 파노라마를 찍어보겠다고 대차게 도전했었다. 이제 그런 원대한 꿈은 다시 꾸지 않기로...


늘 24km쯤을 지날 때, 그러니까 집에서 나와 잠실대교를 찍고 한남대교 남단을 지날 무렵 불현듯 질문하나가 생긴다. ‘오늘 뭐 마시지.’

지나온 거리만큼 남은 거리를 내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자제력은 흰색 티셔츠 마냥 땀에 젖어 흐릿해지고 그 밑에 있던 음주 욕구가 서서히 선명해진다.

다들 알잖나. 운동 후의 샤워, 그 후의 술 한 모금은 극락왕생 익스프레스란 걸.

목욕탕 뚱뚱이 바나나맛 우유가 주는 쾌감의 성인 버전이랄까.

자, 이제 선택의 시간.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

물론 답은 한 참 전에 정했지만 양심에 찔려 괜히 핑계 한번 죽 늘어놓고 잔을 채운다.

멍하니 마시기엔 심심하니 책을 꺼내 독서대에 펼쳐둔다.

누군가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넷플릭스를 켜듯이. 그뿐이다.


솔직히 한땐 꽤나 멋들어진 모습을 상상했다.

고뇌에 잠겨 한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버번을 스트레이트로 때려버리는 이의 고독함.

고되지만 보람찬 하루의 마침표를 레드와인으로 찍는 이의 고상함.

하지만 그럼 그렇지.

원빈의 [아저씨]를 꿈꾼 김봉춘의 콩순이 이발 놀이 대소동이 돼버렸다.

에라이...


와중에 다행인 건, 책과 술. 이 조합 정말 괜찮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