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아니었던 편(中)

마리아주로써 좋은 책 이란

by 기미닉

‘마리아주(mariage)’라는 용어가 있다.

원래는 ‘결혼’이라는 뜻의 불어인데 통상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의 조합’을 일컫는다. 인륜지대사에까지 비유한 걸 보면 서양 술꾼들은 먹고 마시는 행위를 어지간히도 중요하게 생각하나보다.

책과 술에도 마리아주가 있다. 종이를 안주 삼아 먹태 씹듯 질겅거릴게 아니라면 주종은 상관없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술에 어울리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기준점이 다를 순 있지만)어려운 책은 술과 어울리지 않는다.


막걸리를 따르고 니체의 『아침놀』을 펼친 날이었다. 서문에서부터 위압감이 살벌했다.


인내심 강한 나의 벗들이여, 이 책은 오직 완벽한 독자와 문헌학자만을 원한다.
나를 잘 읽는 것을 배우라.

알딸딸해진 나는 인내심이 부족했고 완벽한 독자나 문헌학자도 아니었다. 박민규 작가의 표현처럼 해변에 앉아 수학의 정석을 보는 기분이 들어 20쪽 만에 니체 읽기를 포기했다. 술도 책도 쓰기만 했다.


빠에야 잘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집은 서울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그 와중에 그런 곳인 보석같은 곳. 샹그리아도 팔았으면 참 좋겠는데.... 그래서 대신 주문한 잔술.


근래에 극강의 마리아주가 됐던 책들은 제목부터 주책(酒冊)이었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아무튼, 술』, 『아무튼, 술집』, 『시시콜콜 시詩알콜』…

자고로 술자리는 취기가 오를수록 남이 떨어대는 주책에 기꺼이 동참하며 더 재밌어지잖나.

일면식 없는 이들의 주책을 읽는 동안 온갖 리액션이 터졌다.

“크~”, “으어어어”… 가끔은 본문을 따라 욕도 하고, 별안간 눈동자 아래가 따뜻해지는 걸 느끼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쪽에 한 모금씩을 마시며 책장이, 술이, 밤이 술술 넘어갔다. 어깨춤을 추지 않아도 쭉쭉.


술엔 에세이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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