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아니었던 편(下)

그러했기 때문에

by 기미닉

에세이는 이상적인 술친구다.


우선, 불평 없이 무조건 내 몸 상태에 맞춰준다.

아무리 오래된 편한 친구라 해도 한참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 몰라몰라. 안 들려. 나 자러 갈래. 빠이.”라고 통보하며 자리를 떠서는 안 된다. 운 좋게 상대가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몇 번쯤은 넘어가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매양 같은 식이라면 적어도 술친구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관계 자체가 끊어지고 만다.

에세이는 다르다.

한껏 오른 취기에 차량용 피규어처럼 머리를 흔들거리다 돌연 이불에 쏙 들어가 잠들어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지나도 내가 원한다면 불평 없이 하던 얘기를 마저 해준다. 심지어 앞선 이야기를 전부 까먹어도 괜찮다.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알게 되는 이야기가 훌륭한 이들의 훌륭하지 못한 속사정이라는 것.

자랑 아닌 자기 얘기를 듣기도, 하기도 참 어려운 세상이다. 안전제일이니까.

이제 나도 자랑을 할 땐 짐짓 겸손을 떨어대고, 치부를 드러내야 하면 “제가 좀 생기다 만 놈이랍니다. 헤헤”하며 얼렁뚱땅 웃어넘길 줄 알게 됐다. 이렇듯 안전을 위해 의뭉스러운 사람으로 남는 일에 제법 능숙해졌음을 자각할 때면 ‘나도 그럭저럭 버젓한 어른이 된 걸까’라며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항상 그렇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이번 생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어제는 매번 이미 지나갔고 오늘은 그저 닥쳐있다. 갈팡질팡 하는 동안 내일은 그렇게 여지없이 잠시 오늘이 되었다가 어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시기를 지난 이들의, 혹은 노련하게 버텨나가는 이들의 사례가 절실한데 그 누구도 자랑 아닌 사연은 말해주지 않는다. 나도 그렇듯.

그토록 어려운 일을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해준 게 에세이였다.

이렇게 너그러운 술친구, 아니, 멘토가 또 어디에 있을까.

회사원 A씨, A씨의 출간을 계기로 쓴 광고인 B씨, 자주 가는 카레집 사장님...

에세이를 썼다는 이유로 당신의 의지와는 무관히 내 멘토가 되셨다.


최근엔 보고만있어도 왠지 흐뭇하고 기분 좋은 에세이 칸


누군가 일러주길 바랐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는데 그게 무엇이든 내 마음은 왜 이리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것인지, 방법은 없는 것인지, 정녕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는 건지.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답을 일러주진 않았다. 이래라저래라 계획을 세워주지도 않았다. 외려 “나도 모르겠는데”라며 그저 자기 얘기를 할 따름이었다. 그런 점이 좋았다.

『괜찮아. 위험해, 이불 밖은』 따위의 이름을 붙여 사회성이 박살나 히키코모리로 사는 사람에게마저 땔감을 비싸게 팔아대는 이들처럼 무책임하지 않아서, 다만 생각할 거리를 줄 뿐이라서. 애당초 다른 사람이 답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그들은 술에, 특정 가게에, 카레에, 혹은 그 무언가에 대해 진심이었다.

발견 과정은 다양했다. 원래부터 좋아한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새 좋아진 경우도 있었고, 싫어했는데 뜻밖에 좋아진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만은 똑같았다.

그들의 진심엔 숱한 ‘그럼에도’의 시간이 녹아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녹고 있다는 것.

그들에게 진심은 과정이자 결과였다.


우연히 내게 닿은 그들의 진심 덕에 비로소 알게 됐다.

스스로 ‘~에 진심인 편’이라고 여겼던 것들에서 난 그저 즐거움만 찾고 있었다는 걸.

기쁨도 괴로움도 지침도 매번 너무 빨리 느꼈다는 걸.

때문에 난 아직 무엇에도 ‘진심이 아니었던 편’이라는 걸.


올초에 짤막한 기록용으로 인스타그램에 부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주로 음식 사진이 올라가긴 하지만 그 외의 순간과 관련된 것들도 간간히 게시 중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좋아하는 게 있어서 다행이다.

음식, 술, 자전거, 사진, 글쓰기 기타 등등...

그것들과 관련해서 나름의 사연도 이미 더러 있고 또 계속 생겨난다.

그러니 더 먹고 마시고 타고 찍고 쓰고 해봐야겠다.

언젠간 그들처럼 진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지.



마무리는 김혜경 멘토님의 멘트로.


정말로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의 나를 위하여, 보다 후회 없을 내 인생을 위하여.


위하라잖나. 위하여. cheers!

그 다음도 역시 김 멘토의 멘트로.


치기 어린 취기가 나를 점령한다. 이제 진짜 잘 때가 됐네. 오늘의 나에게,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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