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사 경험이 없다.
옹알이를 하던 집에서 말을 뗐고, 요즘은 그 집에서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쓴다.
입학, 입대, 입사, 여행...무언가로 인해 수없이 많은 곳으로 향했지만 언제나 ○○동 ○가로 돌아왔다.
내가 줄곧 ○○○(본명)이었듯 나는 이곳 주민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과 동네를 내 정체성(正體性)의 일부로 여겼었다.
하지만 오해였고, 나의 틀림을 확인하는 나날이 썩 달갑지 않다.
초등학생 때까지였나.
앞집엔 3대가 한 건물에 살았다. 2층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1층엔 그분들의 딸과 사위(인지 아들과 며느리인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내 또래의 여동생 한 명이 살았다. 더없이 사근사근한 사람들이었다.
앞집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나와 골목을 쓰셨고 아줌마는 매년 여름이면 골목 아이들을 모두 불러 빙수를, 겨울이면 팥죽을 만들어 주셨다.
언제부턴가 앞집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비질이 귀찮아지신 건지 의아해하던 어느 날, 그분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음을 알게 됐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앞집 가족은 이 골목에서 떠났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던 날, 난생처음 이삿짐 차량을 보았다.
장롱이 창문으로 나오고, 침대가 길가에 세워지고... 그림 속의 물체가 액자에서 탈출하는 것 같은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광경이었다.
앞집 가족의 이사를 시작으로, 어색한 광경이 반복되며 익숙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이 골목에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는 세대는 이제 우리 가족을 포함해 세 가구뿐이다.
이사 장면에 점차 익숙해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동네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2018년. 아랫동네의 철거 직전기억 속의 내 나이가 어릴 수 록 옥상에서 보는 전망은 제법 그럴싸했다.
가장 오래된 이미지는 이랬다. 제일 왼쪽에 남산타워가 보였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쭉 돌리면 낙산, 북악산 일부가 보였다. 그리고 잠시 아파트 대단지가 나타났다가 북한산 능선 일부와 봉우리 두 개가 보였다.
이젠 그중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먼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남산타워였다. 어느 브랜드 아파트가 언덕배기에 들어서며 남산타워를 가리고 만 것이다. 서울 땅 넓고 넓은데 하필 그 자리에 지어졌다는 것에, 언제 어디서 봐도 만족스러운 랜드마크를 네모네모빔 처맞은 시멘트 덩어리 따위에 영영 빼앗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네모네모빔 난사가 이어지리라는 사실을.
우리 동네의 집들은 잇따라 쏟아지는 빔에 맞아 흔적도 없이 무너졌고, 그 자리엔 아파트가 자라났다.
남산타워가 그러했듯, 낙산도, 북악산도, 북한산도 기어이 네모난 것들에 가려졌다.
그 뒤로도 아파트 장벽은 사방에서 서서히 내가 사는 블록과 거리를 좁히며 세워졌다.
결국, 지형적으로 언덕인 우리 블록은 사실상의 분지가 돼버리고 말았다.
이제 옥상에서 보이는 건 각진 시멘트들뿐이다.
모든 게 변하고 있었다.
우리 집과 동네가 나의 정체성이라 여겼지만, 실제론 내가 동네에서 정체(停滯)되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나도 다른 곳으로 떠날 때가 된 걸까. 벗어나지 않는다면 끝내 후회하게 될까.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2022년. 완공. 그리고, 또 하나의 블럭이 펜스에 가려진 채 철거일을 기다리고 있다.
늘 그랬듯 답은 선뜻 내려지지 않았고, 외려 의문만 생겼다.
정체성(停滯性)을 정체성(正體性)으로 갖고 살면 안 되는 걸까.
그건 나쁘기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