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 밤엔 김자옥의 <공주는 외로워>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그다지 좋아하던 장르는 아니니 그 노래는 여느 때처럼 대중없는 연상 끝에 재생 목록에 추가됐을 거다. 그리고 의외의 선곡이 썩 맘에 들었지 싶다.
광화문을 지나다가 눈 덮인 인왕산을 보고선 갑자기 요들이 생각나 프란츨 랑을 검색했던 게 <우크라이나 갓 탤런트 키드> 요들 소녀 영상으로, 그다음엔 타케오 이시이로 이어지며 며칠 동안 요들만 들었던 언젠가처럼. 아마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지붕 뚫고 하이킥> 클립 영상에서 김자옥씨를 봤던 게 선곡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날도 역시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노래를 되감고 또 되감고 다시 되감으며 페달을 밟다 원효대교 아래 공터에서 멈춰 섰고,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선 그대로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거울 속에 보이는)“쏴~쏴~쏴~!”(아~름다운 내 모습) “쑤와!쑤와!쑤와!”
그 무렵엔 딱히 신나는 일도 없었건만, 심지어 가끔 흥이 오르면 ‘니가 지금 신날 자격이 있냐’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다그치던 때건만 계속 추임새가 튀어나왔다. 다리를 꼰 채 발끝을 까딱거리기까지 하면서.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얼굴 왼편이 연신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엥?” 고개를 돌리니 다리 중간쯤에서 커다란 서치라이트 빛이 교각 주변을 훑고 있었다.
같은 지점, 다리 위에선 빨간불이 빠르게 깜빡였다.
누군가 추락한 것이다.
몇 년째 거의 매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한강을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구명보트가 다리 아래에서 맴도는 모습을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본다.
말 그대로 잠시 바라볼 뿐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들은 늘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이미 떨어지고 말았으니까.
다만 딱 한 번, 구조대가 출동하기 전에 내 손이 닿은 적이 있다.
작년 겨울이었다. 패딩모자, 넥워머, 패딩, 패딩 바지, 패딩 신발, 스키 장갑을 착용하던 때였으니 2월에서 3월쯤이었으려나.
잠실대교
잠실대교를 건너는 중이었다. 별다를 것 없이 왼쪽에는 올림픽대교가, 오른쪽에는 멀리서 점점이 빨간 빛을 내뿜는 남산타워가 보였다. 다시 앞을 보며 롯데타워에 시선이 닿으려던 순간, “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난간에 가슴을 기댄 채 한쪽 다리를 올렸다가 떨어뜨렸고, 다시 올리고, 또 떨어뜨렸다. 잠시였지만 사고력이란 게 사라진 것 같다. 그저 당시의 행동만 기억난다.
“아저씨! 아저씨!!”라고 계속 소리를 질러댔고,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고, 마침내 그와 가까워졌을 땐 팔을 뻗었다. 내 팔이 그의 머리에 부딪힌 뒤엔 나도 그도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잠깐 사라졌던 생각은 몸을 일으킨 후에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널브러져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악의는 없었지만 내 행동은 남이 보기엔 퍽치기와 다를 게 없었다는 걸, 부축부터 하고 말려야겠다는 걸.
“아아... 죄송해요. 괜찮아요?”라며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은 순간,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어리벙벙해져서 뒤로 물러나자 이번엔 씨뭐 개뭐 하는 욕이 쏟아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계속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쳤는데 발음이 다 새서 뭐라는지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 뒤엔 비틀대며 내 쪽으로 왔다. 분이 풀리지 않아 날 더 때리고 싶은 듯했다. 다행인 건, 당시 그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딴에야 주먹질이었겠지만 양팔을 허공에 휘적거리는 게 봉식이 탈춤처럼 보였으니까. 게다가 난 예수님만큼 착하지도 못해서 얼결에 왼뺨 맞았다고 오른뺨까지 내줄 의향도 없었다.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도, 본의 아니게 공격했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도 들지 않았다.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하, 옌장 잘못 걸렸네’
취객과는 눈도 안 마주치는 게 상책이라 보통 때라면 빨리 자리를 떴을 거다. 하지만 그를 버리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솔직히 순수한 이타성은 아니었다. 걱정했던 건 남겨질 ‘그’가 아니라 두고두고 찜찜해할 ‘나’였다.
문제는 그의 노기를 대화로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 나와 엇비슷한 키, 인사불성. 덤벼볼 만 해 보였다.
냅다 달려들어 팔을 붙잡고 다리를 걷어차니 쉽게 거꾸러졌다. 곧바로 등을 깔고 앉아 무릎으로 양팔을 찍어 눌렀다.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악을 쓰기에 한 손으로 목덜미를 잡았다. 핸드폰을 꺼내 112에 전화를 걸어 앞에 있는 가로등 표찰 번호를 불러주고 빨리 와달라고 했다.
경찰은 그리 오래지 않아 도착했다. 비로소 나와 그는 서로에게서 벗어났다. 하지만 현장에 온 경찰관 두 명 중 한 명은 나 대신 그에게, 나는 다른 한 명의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신고자 분이세요?”
경찰이 도착하면 바로 바통을 터치하고 가던 길을 마저 갈 수 있을 거란 예상은 빗겨나갔다.
내가 그곳에 있던 이유, 누군지도 모르는 저 사람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그를 깔고 앉아있던 경위를 아주 상세히 설명해야 했다. 착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고 근처에 쓰러져있던 내 자전거를 보여줬다. 또, 집에서 나올 때부터 켜져 있던 피트니스 앱을 통해 출발 시간과 이동 경로까지 보여줌으로써 내가 그냥 행인임을 증명하고 나서야 “감사합니다. 가셔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자리를 뜨고 다리 밑으로 내려와 벤치에 앉으니 온몸에 힘이 풀렸다.
‘내가 대체 뭘 잘 못한 거지’
별안간 밀려든 억울은 끝말잇기처럼 울화로 이어져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비벤덤. 그러니까 검정 비벤덤 정도 됐을까. 출처: 미쉐린 가이드 홈페이지이제 와 생각하니 그때 경찰관의 처사는 정당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딩에 잡아먹힌 채 눈만 내놓고 있었으니 오해를 안 하기가 더 어렵겠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드셨으려나. ‘뭐야 저거. 웬 비벤덤 실사판 같은 놈이 사람을 깔아뭉개고 있는데?’
공연히 궁금하긴 하다. 한참을 캐물은 까닭이 그들의 오해였는지, 경찰 매뉴얼에 따른 조치였는지.
아무튼, 그날 밤의 일은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맨 처음 그의 형체를 보았을 때, 그의 다리가 자의로 내려간 게 아니라 다만 몸을 가누지 못해 미끄러진 거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더라면 그 뒤의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런 상황에도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던 방법은 정녕 없었을까. 그 모든 게 내가 모자라서 빚어진 불상사가 아니었을까.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로선 최선이었다고 믿었다.(지금도 마찬가지.)
그런데, 나의 최선이 정말 긍정적으로 유의미했을까. 아마 그 아저씨는 지구대에서 그날의 아침을 맞이했을 거다. 하지만 그게 그의 마지막 아침이었다면? 내 최선은 그에게 최악의 날을 하루 더 추가한 나쁜 짓이었을까.
밥과 달리 곱씹을수록 더부룩해지던 마음은 끝내 탈이 났다. ‘아니 근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지’
한강 어딘가. Pentax Mesuper
내가 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 사고에 영향을 주었다.
어느 날 다리 위에서 위태로운 누군가를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혹시 마주치면 도와줘야지’에서 ‘혹여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로.
승자 없는 ‘선빵필승’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 부질없는 반성으로 심란해지기도 싫었다. 그런데, 후자는 순전히 내 탓이잖나.
그의 탓이라 해야 할지 덕이라 해야 할지... 그날 밤의 난동으로 알게 됐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건 다른 누가 아니라 물러터진 ‘나’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는데도 그땐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마주침을 피한다고 내가 단단해지는 게 아니란 걸.
미봉책에 불과한 바람을 갖는 것으로 고민이 끝났기에 나의 무름은 고쳐지지 않았고, 원효대교 아래 누워 있던 날 비슷한 상황 앞에서 다시 무기력해졌다.
구조대의 불빛은 꽤 오래도록 한자리에 멈추지 못했다.
정작 멈춘 건 “외롭다”는 공주의 넋두리와 그에 맞춰 움직이던 내 발끝의 까딱임, 그리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 시선뿐이었다. 하지만 서치라이트가 멈추기 전에, 그 이후의 무언가를 보기 전에 도망쳤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누가 누가 알아줄까~”. 바로 다음 곡으로 넘겼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물론 그날 이후 한동안 그 노래가 계속 떠올랐지만 일부러 듣지 않았다. 헛수고였다. 음을 되감지 않으려 애쓸수록 머릿속은 계속 그 밤의 원효대교 밑으로 되감겨 끌려갔다.
‘찾았을까’, ‘,살았을까’,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도 이 노래를 들었으면 의외로 추임새를 넣는 자신이 어이가 없어 다리를 끝까지 건넜을까’...... 여전히 무른 놈은 부질없는 짓을 반복했다.
그런데, 문제의 근원이 정말 무름이었을까.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게 핵심이란 추측은 과연 맞을까. 지금도 미처 깨닫지 못한 무언가가 없다고 어떻게 단정하지. 심지의 견고함은 어떻게 측정하지. 아니나 다를까 끝은 ‘아 몰라몰라’가 돼버렸다.
앞에 적은 일들 모두 이젠 다 지난 일이다. 그 일들이 있고 난 뒤에 반복 재생한 곡도 셀 수 없이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주는 외로워>는 듣지 못하겠다. 그게 싫어서 재생 목록에서 빼지도 못한다.
다시금 즐기게 되는 날과 재생 목록에서 지우는 날, 둘 중 어떤 날이 먼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