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길, 등 뒤에서 울린 외침이었다.
난 그냥 회사원이다. 천성적으로 공부와는 사이가 좋지 못해 대학생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는 꿈도 안 꿨다. 그런 내가 우리 동네 골목길에서 들을 만한 호칭은 아니라 무시하고 걸었다.
“선생님니이임!”
두 번째 소리에 비로소 고개를 돌렸더니 실내화 가방을 쥔 P가 뛰어오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게 맞았다. 게다가 그 ‘선생’의 의미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인 것도 맞았다.
P를 처음 만났을 땐 그가 6살 혹은 7살이었다.
당시 난 휴학생이었고, 교회 유치부 교사였다. 꽤 오래전 겨우 1년 남짓 맡았던 일일뿐더러, 스스로를 종교적 회색분자(있어 보이는 말로는 ‘불가지론자’라고 한다더라)라고 여긴지도 수년째건만 P에게 난 여전히 ‘교회 선생님’인가보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명색이 유치부 교사였을 뿐 내가 누굴 가르친 기억이 없어서다.
굳이 꼽자면 아이들에게 ‘인생은 스피드’라는 교훈 정도는 줬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원하는 과자를 더 먹으려거든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첫 번째 그릇을 빨리 비우고 새 그릇을 요청해야한다는, 그렇지 않으면 “아이고 미안...바나나킥 이제 없는뎅” 따위의 비보를 듣게 된다는 실학이랄까.
성서 교육은 내 역할이 아니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설교는 목사(또는 전도사)에게.”
두 번째론, 내가 교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 잘 만나 밥 잘 먹고, 잘 자고, 학교도 잘 다니며 자랐지만 늘 불만이 많았다.
밥숟가락 재료가 사람마다 다른 게, 수면에 죄책감을 느끼라 하는 게, 학교라고 다 같은 학교가 아닌 게 싫었다.
내게 세상은 아수라장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며 사니 마음도 일상도 당연히 엉망진창이었다. 주 6일을 그 모양으로 살고선 일요일이 되면 애들한테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셨어요!”라고 지껄였다. 아무래도 못할 짓 같았다.
복학을 핑계로 유치부 교사를 관뒀고 그때부터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나중엔 모종의 이유로 아예 불가지론자가 됐다.(그뿐인가, 신도는 아니지만 요즘엔 불교를 가장 좋아한다)
이렇듯 ‘교회 선생님’은커녕 그 두 단어 중 어느 것도 어울리지 않는지라 P의 인사에 무안해졌다.
공교롭게도 요즘엔 선생님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현 회사 직원들끼리 대개 선생님이라고 불러서인데, 여기선 그 호칭이 거북하지 않다. 내 이름 뒤에 붙는 선생의 의미가 P의 그것과는 다르니까.
국립국어원에선 선생의 의미를 7개로 규정했다. 그 중 세 번째 뜻은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즉, 아무에게나 써도 된다는 거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도는 들어도 양심에 찔리지 않는다.
또, 내 경우엔 대부분 "쌤"이라고 불린다. 선생님이 쌤으로 줄며 그 뒷말들도 짧아졌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줄인 말이라기보단, 미지근하게 친근한 관계 유지를 위해 생겨난 회사용 별명 같다.
사내용어사전을 만든다면 그 뜻은 이렇게 쓸 거다.
쌤
1. ‘샘’의 된소리
- 관계의 목적이 업무에 한정된 사이에 쓰는 말.
- 본인 소속 부서원에게 쓰는 말. 주로 타 부서 직원에게는 쓰지 않음.
예 : 쌤, 재무실 김회계 선생님 자리 알지?
선생으로 사는 삶도 이젠 꽤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호칭을 여전히 어색해한다는 증거이려나. 쓰다 보니 무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까지 구나 싶다.
문자 그대로 풀자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란다. 이게 어쩌다 단순한 연장자의 뜻을 넘어 학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고, 누굴 가르치기까지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 과정이 궁금해서 검색했더니 공자가 어쩌고 삼국유사가 어쩌고...
어떤 글에서도 스크롤을 세 번 이상 돌릴 맘은 생기지 않았다. 역시 나한테 학식은 갖추는 쪽보단 먹는 쪽이 즐겁다.(세종대학교 소금구이 덮밥이 최고였지)
아쉽게도 다른 의미로는 못 되었지만, 출생 일자를 기준으로 한 선생은 맞다. 어쩔 수 있나. 이미 꽤 많은 사람보다 먼저 태어나버린걸.
이왕 이렇게 됐으니 가능한 한 괜찮은 선생이 되고 싶다.
P와 마주치는 날이 또 올까.
글쎄, 그건 몰라도 그날이 언제건 P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리란 건 알겠다.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임용고시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안 뒤라도 호칭은 달라지지 않겠지. 형이라고 부르기에 나는 그보다 너무 일찍 태어났으니까.
그 때문에 부르는 게 아닐는지. 노인 혹은 노인과 아저씨 사이 그 어디쯤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쓰는 “저기요”·“할아버지”·“아저씨”의 대체어로써의 그것으로.
그런 의미로써라면 꼭 P에게서가 아니라도 듣게 될 날이 올 거고, 그날은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아득하게만 여겼던 ‘언젠가의 나’이기에.
관공서 직원들이 이미 선수를 치긴 했지만... 아직은 아니다. 인정 못 한다.
하지만 마침내 때가 찼을 땐 그 부름에 떳떳해지고 싶다.
세상에 공짜 없다고, ‘저기요’를 대신한 존칭에 어떤 형태로든 적절한 나잇값을 치르지 못하면 경멸을 떠안아야 하니까.
피치 못해 선생이 되겠지만, 그래서 더욱 거저 되진 말아야겠다.
P의 인사에도, 관공서 직원 혹은 그 누군가의 부름에도 당당할 수 있도록, 최소한 ‘이봐요’도 아까워지는 사람은 되지 않도록.
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