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이게 맞다'하고 결론짓는 법이 없지만 이건 예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 생각할수록 정말이지 이건 아니지 싶다.
그래서 이따금 TV나 영화를 보다 얘기가 '다음 생엔 뭐로 태어날래' 따위의 주제로 이어질 때면 퉁명스럽게 묻는다.
"굳이 두 번씩이나? 안 태어나는 건 선택 못해?"
적고나니 낙이라곤 하나 없이 사는 사람 같아 보이는데, 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세상엔 재미, 즐거움, 기타 온갖 긍정적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널려있다.
어찌나 많은지 집 밖에선 말할 필요도 없고, 쬐깐한 이 몸뚱이 하나 누우면 꽉 차는 내 방 안에까지 가득해서 돈을 쓰든 말든 무료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아싸'라 쓰고 '집돌이'라고 포장해서 읽는 일상에 지나치게 잘 적응해버렸는데, 이 때문에 간혹 가족의 걱정을 사지만 정작 나는 대개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차고 넘치니까.
즐길 거리가 늘 있어서 난 언제나 즐겁...긴 개뿔. 그랬으면 지금 방안에서 이걸 쓰고 있을 리가! 그것도 금요일 밤에!!(정확히는 토요일 새벽 4시)
좋아하는 모 작가님은 이렇게 적었다. “취향의 확장을 감당할 깜냥이 되냐”고.
필요한 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취향을 감당할 깜냥이 못돼서 하는 일들과 즐길 거리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하는 경우가 나날이 늘어난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 둘 중 하게 되는 건 보통 당연히 전자다. 이게 능동적 행위라 하긴 어려운 게, 애당초 선택권이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능력이 안 되니 해야 하는 것을 할 뿐이다.
별수 없이 즐길 거리를 백화점 진열 상품 대하듯 ‘나중에’라고 되뇌며 미래형으로 남겨둘 때가 절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즐길 거리는 대개 흡족함보단 결핍의 기폭제가 돼버리고 만다.
성취의 속도가 내 맘과 같다면 늘 충분히 행복할까.
그렇지도 않을 듯하다. 돌아보면 항상 만족감은 짧았고 부족감은 길었다.
바라던 게 이뤄졌을 때, 이를테면 언젠가 센강 구석 그늘에 쪼그려 앉아 샴페인을 홀짝였을 때 혹은 이러저런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생각했다.
‘어랍쇼? 오매 이게 되네. 어쩌면 나름 잘살고 있는 걸지도... 우헤헤헤’
하지만 이런 만족은 짧게는 몇 시간, 길어도 며칠 뒤면 희미해졌고 이내 다른 질문이 선명해졌다. ‘다음은?’
다시 충동적인 흡족함이 들 때까지, 소원은 삶의 결점이 됐다.
이미 이뤄진 것이라고 없어지지도 않았다. ‘언젠가 또 한 번’이 생겼으니까.
결핍의 반복과 증폭은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거듭됐다.
어느 날 갑자기 보살이 될 리는 없으니 나는 계속 나에게 한없이 모자란 존재이지 않을까. 그렇게 늙겠지. 그러다가 뭐... 죽겠지.
와중에 유용한 제품이 되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쓸모도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 애가 탄다.
'이따위로 살다간 이보다 못하게 살 거야'라고 다그쳐보기도 한다.
어찌저찌 사번이라는 시리얼넘버를 붙이긴 했지만 아직 완제품이 아니라서, 그 길이 너무 아득해서, 시간만 흐르다 완제품은커녕 파손품이 되어 폐기처분될까봐서.
단지 기우는 아니지만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기쁨으로 불안을 빚는 습성 때문에 완벽한 날은 오지 않으리란 걸.
역시, 사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살아야지.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해 늘어난 삶에 대한 혐오도는 사실 애착의 정도이기에.
“이번 생은 글렀다”고 내뱉었던 자조의 본심은 잘 살아내고 싶다는 간절함이었기에.
잘 사는 방법은 차치하고, 잘 산다는 게 뭔지도 점점 더 모르겠다.
그럼에도 제법 잘 지내고 있다고 짧게나마 여기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요즘엔 좋아하는 카레 집에 한 달에 한두 번쯤 들려 밥을 먹을 때,
이따금 ‘덕질’하고 있는 가수, 작가 등 덕주님을 알현할 때,
언제나 “얼굴 까먹겠다”가 첫인사인 드문 만남이 이뤄질 때,
이 정도면 썩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을 평가하는 척도로써는 시시한 것들로 미미했던 효능감에 불이 붙는 걸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자질구레한 이유로 근 몇 달 동안 자주 살 만했다.
살 만하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두 시간쯤.
분기에 한 번꼴이었는데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싶다.
과연 옳은 판단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그런데 뭐, 내가 답을 완벽하게 내린 적이 있었나.
‘최종_최종 2차_최최최종_진짜 최종’이 일상인걸.
일단 짬짬이 기뻐져 볼 작정이다.
하나둘 계획을 세웠더니 12월 중순까지는 살 만할 것 같다.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는 다짐도 해본다.
사는 건 어차피 적성에 맞지 않을 테니, 정성껏 이라도 살아보자고.
2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