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 좋은 때는 없다

by 기미닉

늘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자전거를 탄다.

이 습관에 관한 질문을 몇 번 받았었는데 빈도 높은 물음 중 하나는 이거였다.

“밤에 타면 위험하지 않아?”

대저 “딱히...?”라고 대답했지만 확실히 낮에는 경험하기 어려운 위협을 느끼곤 한다.


심야의 운전자들은 분명 주간보다 빠르게 달릴 뿐 아니라 신호를 무시하는 경우가 흔하다.

가급적 자전거 전용 도로로만 다녀도 안전이 보장되진 않는다.

바퀴가 두 개만 있으면 다 같은 이륜차라 믿는 건지 그 길을 오토바이로 달리는 미친 양반이 적지 않다.

새벽이라는 시간적 특성에 계절 또는 지역의 특수성이 더해지기도 한다.

겨울의 공중화장실에선 볼 일을 보다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노숙 임꺽정에 식겁할 확률이 높다.

(노숙인 전부를 잠재적 범죄자라고 매도할 의도는 없다만, 운 나쁘면 소변 누다가도 목에 칼 꽂히는 흉흉한 세상이잖나.)

잠수교에선 유독 황소나 말 한 마리가 그려진 이탈리아제 자동차가 깜빡이도 없이 앞으로 끼는 일이 잦다.

(난 무서워서 절대 차도로 다니지 않는데!)

많아봐야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그 차주들은 자기 차를 면책특권 증명서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부러워서 하는 시샘이 아니냐고 따지면... 맞다!! 개부럽다!! 난 이번 생에 누려보지 못할 삶인데 거 좋겠수다!

하여, 제안하건대 면책특권까지 옵션인 비싼 차를 타고 다니시는 분이라면 좀스럽게 자전거 도로를 탐내기보단, 007처럼 자동차로 남의 집 지붕을 넘어 다니는 편이 더 간지 폭발이니 그걸 실행해 보심이 어떠실는지...


언젠가의 한강. 사진 속 인물은 내가 아니다.


아무튼, 이런 위험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에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유는 이쪽이 훨씬 편해서다.

무언가를 취미로 꾸준히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야외 사이클링(특히 낮에)을 할 땐

▲ 주행선 오른쪽 가장자리에 붙어서 달리기
▲ 추월 전엔 벨을 울려 앞 주행자에게 신호 보내기
▲ 후방을 직접 확인하거나 왼팔을 뻗기


등의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싸움이 날 수 도 있다.

신호등 볼 줄 몰라서 교통사고 나는 게 아니듯, 기껏 규칙을 지켰다 해도 여러 이유로 얼굴 붉히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

그런데 자정을 넘긴 시간엔 문제 발생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시비 붙을 사람도 줄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강변에선(오전 1시 이후 청담대교 남단~성수대교 남단까지가 제일 적합하다.) 창정이 형으로(의욕만...) 변해 즉흥 콘서트를 열어도 민망하지 않다.

(※내가 그랬다는 물증을 제시할 사람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이지, 이러면 안 된다.)

즉, 밤엔 어쩌다 한 번 조심하면 되지만 낮에는 주행 내내 많은 사항을 신경 써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심야 사이클링은 편리성에 따른 선택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역시 완벽하진 않다.


절대다수의 이들에겐 자전거쟁이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따릉이를 횡렬로 타는 사람들, 보행로가 있는데 굳이 자전거 도로 가운데에서 걷는 사람들이 길을 막는다.

하... 예수님의 말씀을 속으로 되뇐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

당연히 뻥이다. 난 기독교인도 성인군자도 아니다. 아울러 아드레날린인지 뭔지 몰라도 운동으로 촉진된 호르몬의 영향 탓에 평소보다 격앙돼 매번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띠링!!!”


한강변 이촌동 어딘가


최선을 다해 소리를 지른 게 맞다.

나도 기백 넘치게 성대를 써서 소리 내고 싶다. 그런데 어떡하나,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소리 내는 게 최대인 ‘분노 조절 잘해’인 걸. 그것도 아주, 매우, 겁나게.

온라인에선 ‘분노 조절 잘해’들의 특징으로 ‘강약약강’을 꼽는다. “흥, 가소롭긴...” 그 정도론 상기 부사를 덧붙일 수 없다. 나처럼 ‘늘 약’ 정돈돼야 한다.

‘늘 약’의 태도란 이런 것이다.


1. 어깨빵은 무슨. 옷깃만 스쳐도 자동으로 허리가 접히고 “죄송합니다.”를 외친다.
2. 골목 어귀에서 불의를 보면 즉시 눈을 깔고 속도를 더 해 가던 길을 간다.
※ 예외 상황이 있을 수는 있다. 강화자(78) 씨가 아니라, 가슴에 해님반(5세)이라고 적힌 명찰을 단 김꽃님 양이 “어이 형씨, 1000원 드릴게 말보로 레드 한 갑이랑 앙팡 요루르트 한 줄 사 오고 500원 거슬러오쇼”라고 명령하면 심각히 갈등해보겠다.


그렇다고 표현의 방식도 언제나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난 꽤 치밀하다. 분노 표출의 수위를 점층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의 소리 : 마음의 소리’를 적으니 참고 바란다.


가. 띠링V띠링 : 10초 정도 뒤엔 지나갈 테니 길을 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 띠링띠링 : 5초 정도 뒤에 지나가니 비켜요!

다. 띠링띠링띠링x∞ : 좀 꺼지라고!!
(많이 순화했다고 생각하세요? 오...절 잘 아시네요. 친해져 봅시다. 제 번호는 010-728...)


‘다’번까지 했는데도 안 비켜주면 어쩔 건지 묻고 싶으실까 봐 구어체로 적어드린다.

“어쩌긴 뭘 어쩝니까. 안장에서 내려서 잠깐 걷습니다. 말했잖아요. ‘분노 조절 아주 매우 겁나게 잘해’라고.”


14년 전에 산 내 첫 자전거. 몇 번의 수술을 거쳤으나 노쇠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지난해 8월, 결국 젊고 성능 좋은 새 MTB에 자리를 물려줬다. 그동안 수고했어ㅠㅠ



아무리 기다려도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1시, 2시, 3시, 심지어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날까지. 어느 때에도 누군가는 내 앞에 불쑥 튀어나온다. 심지어는 너구리와 (특히) 고양이까지도.


발 닦고 잠이나 자는 게 가장 편한 선택인 줄은 알지만 그러진 못하겠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

흔히 팔지 않는 요리라면 원데이클래스라도 가서 해 먹어야 발 뻗고 자는 ‘돼지런함’을, 솔직하게는 ‘식탐’을 포기하지 못하겠고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체중계에 65kg이 찍히는 꼴을 보는 것도 싫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런 상황은 내게 비단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공포에 가깝다.

그러니 별수 없다. 타야 한다.


하긴, 이상한 무언가에 방해받는다는 피해자적 관념 자체가 온당치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남들 다 지키는 규칙이 지키기 싫어 야음으로 숨어든 쪽 이질 않나.

갑자기 뒤에서 벨을 울려대는 나 또한 그들에겐 산통을 깨는 무언가였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변인인 채 지나갈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근 천만 명이 사는 동네니까.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달 주행 기록을 보니 오늘까지 약 850km를 탔다.

다음 달 말일엔 1,000km 찍기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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