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어에 신경이 곤두설 때가 있다.
이를테면 영어 듣기 평가 시간, 지문 서두에 쉬운 단어가 나왔을 때가 그렇다.
아는 낱말은 머리에서 맴돌며 뒤에 오는 말을 전부 귓바퀴에서 물리쳐버린다.
그런 순간은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속이 상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잦아졌다.
오늘은 노래를 듣다가 그랬다.
‘하염없이’
약 4분 30초짜리 곡에서 이 말은 딱 세 번 나왔지만, 머릿속에서 가사 내 다른 낱말을 전부 쫓아냈다.
어떤 뜻일까.
뉘앙스는 어렴풋하게 알았지만 정확한 뜻은 생각나지 않았다.
글자를 쪼갰다.
‘하염’과 ‘없다’가 더해진 합성어일까.
‘하염’? 왠지 한자어일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한자 급수증을 땄다.
‘한자를 잘 알면 어휘력이 늘겠지’라는 막연했으나 간절한 기대로 시작한 공부였다.
씁쓸하게도 어휘력 상승은 체감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난 본디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놈이라 고작 2,400자를 외우는 데는 몇 달이나 걸렸으면서도 가물가물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지하철역에서 한글과 병기된 한자를 읽은 뒤 지명의 유래를 맞출 땐 내심 우쭐해지곤 한다.
‘올ㅋ 좀 하네.’
그 어쭙잖은 지식 자랑을 또 부리고야 말았다.
그 노래를 처음 듣던 날엔 철원에 다녀왔다. 그날의 하늘. 2021
어찌 하(何)에 생각 념(念)...?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
뭐 그런 게 아닐까.
멋대로 한 추측이었지만 용례를 떠올리니 어색하지 않은 게 그럴싸한 답안 같았다.
표준국어대사전 앱을 켜고 ‘하염없이’를 검색했다.
‘하염없-이 「부사」 「1」 시름에 싸여 멍하니 이렇다 할 만한 아무 생각이 없이.…’
웬걸, 한자가 들어있는 괄호 따윈 없었다.
‘순우리말이었구나...’
내 답안은 풀이의 시작점부터 어긋나있었다. 젠장.
이 말을 이런 경우에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유레카”
해가 넘어갈 때마다 나이와 함께 삶에 꼬인 지점이 늘어가는 이유였을까.
엉터리로 접근했기에 결코 맞출 수 없던 ‘하염없이’의 뜻처럼,
판단의 근거가 지질한 경험이었기에 내 삶은 손댈 수 록 엉키고 말았던 건 아니었을까.
그랬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해서 나날이 엉망이 되어가는 중은 아닐까.
그런데, 이 생각은 과연 타당한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
나대지 말라 경고하는 자기 불신.
양극단 사이에서 한참 헤매다 지쳐 끝내 생각을 멈춰버렸다.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적는다.
오늘은 그랬더라고.
가사에서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하염없이.
노래. 장범준 – 잠이 오질 않네요
2021년 8월에 쓴 글.
다른 글들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왜 서랍에 두고 꺼내지 않았을까
아마 잊었지 싶다.
무튼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