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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 Aug 26. 2022

엄마의 구름 신발

① 니들 신발 사줄 때 참 좋았어, 그땐 나도 젊었으니까

     

D병원에서 엄마와 남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지난 2월 24일, 엄마의 신장기능이 약해져서 일주일 정도 입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동생이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입원접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 병원 로비엔 입·퇴원하는 사람들로 빈 의자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하루 20만이 넘는 코로나19 오미크론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엄마가 나를 보자 두 팔을 벌렸다. 엄마와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서로의 등을 어루만졌다.     

 

“엄마~, 일주일이래요. 치료 잘 받으시면 더 일찍 집에 갈 수 있어요.”

“그럼, 그래야지. 난 괜찮은데... 쟤는 날 자꾸 여기(병원)에 데리고 오는구나. 이거 봐라. 여기 온다고 이 신발도 신었잖니. 집에 신을 게 얼마나 많아. 이걸 다 언제 신냐. 낼모레면 갈 늙은이가 말이야, 하하하... ”   

   

엄마는 전혀 입원할 사람 같지 않았다. 평소보다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치매인 엄마는 혈액종양을 비롯해 고혈압 등으로 정기 검진을 받는다. 그때마다 남동생이 동행한다. 엄마는 지난번 아흔세 번째 생신선물인 ‘효도신발’을 신고 내 앞으로 발을 쭉 내밀었다. ‘누나, 이거 이쁘지? 발바닥에 쿠션이 있어서 발이 덜 피곤하대. 엄마 눈이 은근히 높잖아. 엔간해선 눈에 안차 하는데 이건 좋아하셔.’ 작년 겨울, 동생이 톡으로 사진을 보내며 나눈 얘기다. 


재질이 천연소재라는 신발은 바닥이 찰고무다. 중간 톤의 갈색으로 발볼 쪽엔 리본이 달렸다. 혈액순환을 돕는 기능성 신발이 정말 기능을 발휘하는지 엄마는 발바닥이 아주 푹신하다며 구름 신발이라고 했다. 날 풀리면 그 신발을 신고 쑥 캐러 갈 거라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었다.


병실로 들어가기 직전 환자와 보호자 모두 코로나 검사가 의무였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4시간이 걸린단다. 고령의 엄마가 그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있기엔 무리였다. 병원 관계자 한데 사정을 말하고 우린 6인이 같이 사용하는 병실로 들어갔다.      


“엄마, 물드세요. 가운으로 갈아입으시고... 오늘 저녁은 병원 밥이 아니고 밖에서 포장해올게요. 뭘 사 올까요?”“나 안 먹어도 돼. 배 안 고파. 근데 진영인 어디 갔어?” 


동생이 가자 엄마는 갑자기 풀이 죽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얘는 어디를 갔냐고 서너 번을 물었다. ‘일주일 후에. 오늘부터 여섯 밤 자면 진영이가 엄마 모시러 와요.’ ‘응~ 그렇구나, 여섯 밤...’ 캐비닛 칸에 엄마 물건과 내 옷가지 등을 넣었다. 슬리퍼를 꺼내고 효도신발은 따로 노란 비닐에 담았다. 그러자 엄마가 구름신발은 당신 침대 머리맡 아래 두라고 손짓했다.   

   

병원에서는 오후 5시 반에 이른 저녁이 나온다. 엄마는 포장해온 청국장을 거의 남겼다. 내가 ‘이번 한 번만, 딱 한 숟갈만’을 애원하다시피 해서 겨우 몇 수저를 넘기더니 아예 입을 꾹 다물었다. 남은 밥은 내가 다 먹었다. 간호사가 오더니 엄마 팔에 링거를 꽂고 검사에 필요한 소변을 받아달라고 종이컵을 놓고 갔다.  

    

나는 수시로 엄마에게 물을 드렸다. 병실은 텔레비전과 간호사들이 드나드는 소리, 환자의 신음이 뒤섞여 끊어질 듯 이어지곤 했다. 엄마는 맹숭맹숭 날 쳐다보며 내 한 손을 잡고 빙그레 웃었다. 낮에 두툼한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둘렀을 땐 몰랐던, 엄마의 마른 몸이 나뭇가지에 후줄근한 옷가지를 걸친 허수아비 같았다. 나는 엄마 옆에 엎드려 온통 백발인 엄마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엄마~, 우리 키우면서 언제가 좋았어요?”“니들 클 때? 음,,,그땐 좋았지. 시장에 데리고 가서 신발사 줄 때 참 좋았어. 니들 어릴 땐 나두 젊었으니까. 신발은 언니 두 개 살 때 넌 하나를 살까 말까 했지. 너는 기운 없이 살살 다녀서 신발이 안 떨어지잖아. 니 언닌 힘이 좋아서 한 달에 한 켤레씩 떨어지더라. 신발주머니도 어디다 놓고 오는지 사주면 금세 잃어버리고...”


엄마의 말끝에 한숨이 지나갔다. 엄마 머릿속엔 어떤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커튼 사이로 인기척이 들렸다.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보호자님, 잠깐 나와 보시겠어요?’한다. 나는 간호사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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