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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 Aug 29. 2022

엄마의 구름신발

② 엄마가 코로나 확진자? 그럼 '우리'는...



“코로나 검사에서 할머니 수치가 의심스럽다고 나왔어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에요. 결과가 나오면 보호자님 핸드폰으로 연락이 가요. 그래서 지금 일단 할머니만 1인실로 옮기실 게요. 할머니 이동하시고 보호자님은 커튼 치고 연락이 갈 때까지 밖에 나오면 안 돼요.”     


귀가 멍했다. 엄마가 코로나라니. 아니, 지금은 의심스럽다고만 했다. 엄마는 그동안 가족 외엔 외부사람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엄마 방에 들어갈 땐 창문을 열고 누구라도 마스크를 꼭 썼다. 고령인 데다 지병이 있어서 백신 접종은 하지 않기로 가족들이 의견을 모았다. 대신에 동생과 나, 언니가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환기를 시키면서 수시로 손이 닿는 문이나 침대 모서리 화장실 등에 소독을 했다. 엄마는 병원에 오기 전에도 열이 나거나 기침 증상이 전혀 없었다.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시간에도. 그렇다고 항상 엄마 옆을 지키는 반려견 ‘두부’를 의심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엄마한테는 치료가 필요해서 잠시 다른 방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제 좀 쉬려는데 번거로운 듯, ‘여기 그냥 있으면 좋겠구먼 왜 옮기느냐’고 물었다. ‘잠깐이면 된대요. 나도 금방 갈게요.’ 누웠던 엄마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꾸물꾸물 일어났다. 짐을 옮길 일은 아니었다. 엄마만 잠시 간격을 두고 있으면 된다. 다시 이곳으로 오실 테니까. 간호사 부축을 받아 엄마가 1인실로 들어가자 딸깍, 문이 닫혔다. 내가 따라 들어갈 수는 없었다. 1인실은 다행히 내 걸음 스무 발짝의 간격일 만큼 가까웠다. 간호사가 다시 강조하며 말했다.   

   

“보호자님은 할머니와 밀접접촉자로 따로 연락이 갈 때까지 커튼 치고 나오지 마세요.”      


나는 원래의 6인 병실로 돌아왔다. 빈 침대에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동생이나 언니한테 연락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동생은 일하는 건설현장 숙소에 도착했다고 엄마와 내가 청국장을 먹을 때 연락이 왔다. 언니는 지금 한창 저녁 준비로 바쁠 시간이다. 숙박업이 내내 부진해서 하숙으로 돌린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지역 공단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숙박을 하면서 아침저녁 식사할 곳이 마땅찮아 숙박만 하는 곳보다는 밥도 같이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는 분위기였다. 언니는 조리사 자격증도 있고 식당을 했던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딩동, 핸드폰에 문자가 떴다. 내 이름 아래 코로나 검사 음성 판정이 확인된 내용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근데 왜 내 것만 왔을까. 엄마의 신상정보는 모두 내 폰으로 입력해놨는데. 나는 문자가 오길 기다리면서 엄마 침대에 무거운 머리를 뉘었다. 간호사가 다시 왔다. 이번엔 말없이 손짓으로 나를 나오란다.     


“할머니는 양성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바로 음압 병동으로 가셔야 하는데 지금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돼요. 보호자님은 할머니랑 있으셔야 되니 지금 짐을 갖고 나오세요.”     


숨이 가빠졌다. ‘급할수록 차분히’를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풀었던 짐을 다시 쌌다. 엄마가 코로나라니. 그럼 동생과 언니는 괜찮을까. 나는 엄마랑 밥도 같이 먹었는데 아, 그건 검사 이후였으니 음성으로 나왔던 걸까. 다시 검사한다면 나도 음성일 수 있겠구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짐을 정리하고 병실을 나왔다. 간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 왔다. ‘이거 원래는 환자가 해야 하는 건데 보호자가 착용하세요. 할머니한테 하라고 할 순 없잖아요. 힘들더라도 보호자 안전을 위하는 거니까 꼭 쓰고 있어야 돼요.’ 나는 우비처럼 길고 얇은 비닐 가운을 입고 라텍스 장갑을 꼈다. 내 마스크는 벗고 코와 눈 아래 뺨을 꽉 조이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런 다음 선캡처럼 생긴 투명한 안면 보호 비말 차단 모자를 썼다. 그러자 금세 양쪽 관자놀이가 쑤시는 듯했다.      


하릴없이 멀뚱히 앉아있던 엄마가 나를 보자 반색했다. ‘엄마, 나 왔어요.’ ‘그래, 어서 와. 얼굴엔 뭘 그렇게 썼어?’ ‘코로나 걸리면 안 되니까요.’ ‘그렇지, 걸리면 안 되지.’ ‘코로나 걸려도 치료 잘 받으면 돼요. 이렇게 모자랑 장갑을 낀 건 내가 걸리면 엄마를 돌봐드릴 수 없어서예요.’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엄마가 놀라지 않고 잘 알아듣게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엄마가 코로나래요.’ ‘내가?’ ‘네, 그래서 여기로 온 거예요. 다른 사람들한테 옮기면 안 되니까요. 오늘 밤 자고 내일 코로나 치료받는 병실이 나오면 잠깐 가셨다 오면 돼요.’ ‘응, 알겠어.’ 엄마는 뜻밖에도 알겠다고 무심히 대답했다. 혹시라도 엄마가 걱정하고 놀라면 어떡할까 싶던 내가 오히려 무색했다.    

  

일인 병실로 옮긴 직후, 여기저기 흩어진 짐들이 마치 어지러운 내 마음 같다. 



엄마와 나 둘이 있는 1인 병실은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보호자 침대는 6인실의 옹색한 크기와 달리 넉넉했고 환자 침대 옆으로 운신할 수 있는 간격이 확보되었다. 창문을 조금 열고 엄마 병원복 위에 겉옷 하나를 걸쳐드렸다. 침대 머리맡엔 간호사실로 연결되는 장치가 있었다. 저 장치를 통해 궁금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짐을 대강 정리하고 보니 엄마 구름신발을 빠트리고 왔다. 간호사실로 연결해서 우리가 오기 전의 병실 침대 아래 노란 비닐봉지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는 문 앞에 갖다 놓고 노크로 사인을 할 테니 그때 가져가란다. 구름신발은 다시 엄마 침대 머리맡에 놓였다. 엄마는 자꾸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링거 줄을 살피며 걸음이 불안한 엄마를 부축해서 같이 들어갔다.    

       

라텍스 장갑을 낀 두 손에 땀이 찼다. 같은 공간에서 나는 엄마와 간격을 두고 움직였다. 비말 차단 모자 양 끝부분이 눌려 머리가 점점 지끈거렸다. 모자를 벗었다. 장갑을 끼고 엄마 뒤를 봐줄 수는 없었다. 손에서 땀이 물이 되어 떨어졌다. 엄마는 이제 좀 자야겠다고 누우면서 내게 ‘너도 피곤한데 자라’고 한다. 그러면서 또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나를 불렀다.      


내일 엄마는 음압 병동에 들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내일이 그다음, 그리고 그다음 날로 미뤄진다면... 우리는 계속 외부와 차단된 채로 이곳에 있어야 할까. 병동에 들어간다 해도 지병이 있는 고령의 엄마가 무사히 돌아오실까.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백신 접종을 해드렸어야 했나... 생각은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창밖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스크를 쓴 엄마의 나지막하게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천연덕스러웠다. 나는 막연히 불안하고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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