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토 Sep 12. 2022

누군가 할머니의 국수값을 냈다.

사람들 마음에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뜬다, 추석이다.   

                      

대전 유성구에 9일 유성 오일장이 섰다. 날씨는 쾌청하다. 명절을 하루 앞둔 재래시장 추석 대목은 냄새부터 다르다. 차가 붐비는 사거리 쪽 떡집에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직접 송편을 만들고 쪄서 파는 곳이다. 떡집과 기름집, 방앗간이 있는 곳도 때맞춰 붐빈다. 햇살이 따끈하다.




마트에는 채소가 랩이나 비닐에 담겨 있지만, 재래시장에서는 만져보고 살 수 있는 맨얼굴의 것들이다. 만져보는 채소를 장바구니에 담는 게 좋다. 나는 양념거리로 붉은 고추와 대파, 무를 사러 왔다. 그동안 비가 자주 내려 채소 값은 재래 장에서조차 만만찮다. 장이 서는 골목을 돌다 보면 어느 땐 왔던 길을 또 오기도 한다. 한 바퀴 돌 때와 달리 두 번째는 보이지 않았던 괜찮은 물건들이 눈에 띄고 값도 만족스럽다.


점심때가 되자 시장 안쪽에 있는 국수와 보리밥을 파는 곳엔 자리가 꽉 찼다. 안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보통 밖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을 지날 때 모서리에 앉은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국수가락을 입에 넣는 걸 보았다. 한눈에 봐도 할머니는 부실한 치아 때문에 국수를 시킨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머리가 온통 백발이었던 엄마 생각에 뒤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걸었다.  


사람들 손에는 거의 물건을 산 봉지들이 들렸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장사를 하기도 했다. 어떤 젊은 아빠는 자기 아이를 포터에 태우고 장을 보러 왔다. 장에는 찬송가를 틀어놓고 배를 밀며 구걸하는 노인이 늘 있다. 돈을 넣는 바구니엔 동전과 1000원 지폐 두어 장이 들어있다. 노인이 배를 조금 밀다가 멈추더니 박카스 뚜껑을 열려고 했다. 엎드린 채로 한 손이 계속 뚜껑 옆으로 헛나갔다. 그걸 본 상인 한 분이 ‘이리 줘바요. 따드릴게’한다. 그 앞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되돌아와 지폐 한 장을 바구니에 넣었다.




한 개에 5천 원 하는 무는 크고 실했다. 국거리에 한 번 넣기엔 너무 컸다. 게다가 비쌌다. 다시 골목을 돌아 아주 적당한 무를 발견했다. 크기가 작았지만 괜찮았다. 가격도 만족스러웠다. 만들어 파는 반찬가게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시금치 한 근은 6천 원, 시금치나물은 한 팩에 8천 원이다. 같은 양으로 마트에서는 1만 원이다. 어떤 손님이 '이번엔 시금치 먹지 말지 뭐'하며 지나갔다.


녹두부침개를 사러 온 손님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또 다른 곳은 녹두부침개를 파는 곳이다. 부침개는 한 개 6천 원, 포장 반죽도 6천 원이다. 반죽을 집에서 부치면 두 개가 나온다. 나도 이곳에서 종종 녹두부침개 반죽을 샀다. 엄마가 좋아했던 녹두부침개, 기름 냄새도 뒤따라오는 것 같더니 국수 골목에서 사라졌다.



국수가게에서 아까 국수가락을 빨아올리던 할머니를 정면으로 보게 됐다. 흘러내린 흰머리를 뒤로 넘기던 할머니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며 천 원짜리 세 장을 손에 쥐고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여기 앉았던 사람이 할머니 거 계산하고 갔어유."     


할머니는 그 말을 잘 못 알아들었는지 엉거주춤 일어나며 되물었다.     


"뭐라구? 내 국수 값을 누가 낸 겨?"     


주인은 바빠서 말할 짬이 안 나는지 큰 소리로 말했다.


"암튼 할머니는 계산됐으니까 그냥 가시믄 돼유."     


주인이 재차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먹은 국수를 나도 모르는 사람이 왜 계산했을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겼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등이 굽은 할머니는 오늘 같이 맑은 날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에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추석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구름신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