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어린이도서관만들기 기록 20.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부지런한 반디들
밖으로 나온 반디들의 감성이 촉촉해진다. 길가에 핀 개망초나 자운영 꽃을 바라보는 눈에는 온통 자연의 빛깔이 물들었다. 구름이 얕게 깔려있어서 쨍쨍한 날보다는 움직이기엔 알맞았다. 대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숲으로 알려진 갑천의 월평공원에서 반디들이 모였다. ‘생태교실' 첫 번째 교육으로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장경운씨 해설로 공원에서 자라고 있는 여러 가지 식물들의 이름과 작은 하천의 중요함을 설명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장경운씨 해설을 듣고 있는 반디들.
출발하는 반디들
관찰
작은 하천의 ‘웅덩이'는 눈에 보이는 대로 보자면 ‘비호감'이다. 하지만 이런 웅덩이가 수질과 수량을 조절해 주고 다양한 종이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이다. 그 역할은 매우 소중하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간이정수기'처럼 웅덩이를 통해서 한번 걸러진 물은 온도를 적절하게 맞추어주기도 한다. 이런 웅덩이가 없으면 물은 그대로 곧장 대전천으로 올라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대전천에서 달궈진 수온은 3도 정도의 온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천둥치에 잘 정돈된 잔디가 보기에는 그럴싸해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웅덩이가 왜 중요할까요?
웅덩이(습지)에 모여있는 마름
계란꽃으로 불리기도 하는 개망초
웅덩이에는 또 양서류, 파충류의 산란장으로 가장자리에는 개구리와 두꺼비 알이 차 있다. 도룡뇽은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여기면 떠내려 갈까봐 알을 나뭇가지에 묶어 놓는다. 예전엔 도룡뇽 ‘알'로 장마비의 양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러니 웅덩이는 그냥 웅덩이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에 매우 중요한 생명 터이다.
공원을 둘러보며 반디들은 ‘꿩, 꿩...' 하고 우는(?) 꿩소리를 그윽하게 느끼며 여러 가지 이파리들을 채집한다. 걷는 길에 이따금씩 보랏빛 자운영 꽃들이 피었다. 월평공원은 공원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개인이 개발하거나 하천부지에 농사를 지을 수 없지만 어떤 곳에는 강낭콩이 띄엄띄엄 심어 있기도 했다.
한 모둠에서 채집한 꽃과 이파리
아이들과 생태체험을 할 경우, 교사는 미리 도감을 숙지하고 활용해야 한다. 생태체험의 열쇠는 ‘봤다!' 는 것이다. 그리고 꼭 식물들의 이름을 다 알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아이들의 손에 공책과 필기도구가 들려지는 순간, 뭔가를 적기위해 움직이면서 자연을 느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들 ‘손(마음)'을 자유롭게 해주고 이파리나 꽃잎 등 직접 따볼 수 있는 것은 따보게 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직접 체험한 것은 90% 기억하지만, 노트에 써 본 것만으로는 희미한 기억을 할 뿐이다.
내가 채집한 이파리나 꽃을 설명하며 그림을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형상화를 시켜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거나 저렇게 ‘느낀다'는 정해진 답이란 있을 수 없다. 풀(꽃)을 이용해서 뭘 할 수 있는지, 필요하다면 한 두가지 정도 의미부여를 해주고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맡겨둘 일이다. 아이들 모둠인원은 5명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많으면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긴다. 자연체험의 핵심은 ‘자유로움'이다.
모둠별 '작품' 표현.
다섯모둠으로 나눠진 반디들은 모둠별로 채집한 이파리들을 모아 도화지에 각 모둠의 개성을 표현했다. 풀로 붙이고 꾸민 ‘작품'이 공개되면서 여기저기 감탄어린 목소리가 터진다. 흰 도화지에 그냥 붙여있는 풀이지만 의미를 부여하자 한 모둠이 어떤 주제로 무슨 얘기들을 나누었는지 기억했다.
작품보다 해설이 푸짐했던 정봉현 반디.
반디들의 작품설명
- 정봉현: 같은 모양을 만들어 가며 세력을 넓히는 식물들의 세계가 끔찍하다.
- 김은미: 법칙과 미션을 무시한 자연 자체가 즐거움이다. ‘며느리 밑씻개, 며느리가 뭔 죄라고...'
- 석연희: 자연에 꼭 필요한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고생대식물이 진화를 통해 현대로 출현하는 식물,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동물, 자연은 아름답다. 그러니 (인간은)까불지 말자!
- 장미경: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들려드릴게요.
- 이준영: 개발지향의 마음을 풀잎으로 표시하면서 사랑의 변천사를 표현했다.
자연에서 먹는 도시락은 꿀맛! 찐계란도 싸왔어요.
발표가 끝나고 기다리고 기대하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반디들 각자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마치 소풍 온 어린애들처럼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졌다. 거기에 도란도란 얘기하며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 행복한 세상이 따로 없다.
갑천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진행자
대전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듯 둥지형 분지다. 3개의 큰 물줄기가 도시 한 복판을 지나가는 곳은 거의 없다. 3개의 천이 합쳐진 곳이 ‘삼천동'으로 실제 삼천교에 가면 돌멩이 세 개가 있다. 오른손바닥을 펴서 보자면, 동편으로 대전천 유등천이 흐르고 서편(가운데선)으로 갑천(월평공원)이 흐른다.
갑천은 산에서 뿐만이 아니라 하천에서 나는 종다양성이 있어 수변(水邊)생태계와 육상생태계가 연결되어 있고, 생태피라미드형성 자체가 안정적이다. 산과 물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갑천. 환경단체에서는 ‘생태섬'(고립되어 있다는 뜻)이라 부르기도 한다.
갑천엔 맹금류, 황조롱이가 서식하고 있고, 어느 곳 보다 종이 다양하다. 어쩌면 온갖 동물들이 이곳에 뭔가 먹을 것이 많고 살 만하기 때문에 왔는지, 아니면 정말 살 곳이 없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 사람마다 보는 해석이 다르다.
동물들의 아지트
하천은 단순히 물길이 아니라 바람길 이기도 하다. 하천 주변에 아파트 값이 비싼 이유는 정체된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며, 공기와 푸른 경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큰 규모의 하천이 도시를 관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연생태공간의 중요한 갑천
월평공원은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곳이다. 대전도심 한 가운데 있는 자연생태공간인 이곳에 ‘월평공원 관통도로'의 계획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공원과 갑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시민단체과 주민단체가 모여 ‘월평공원 관통도로'를 반대하고 있다.
돌아가는 아쉬운 시간,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졌다.
대전의 갑천(월평공원)은 엄청나게 많은 등산로가 흩어지거나 열려있어서 쉽게 망가지기 쉬운 염려가 있다. 아무생각 없이 차량으로 질주하는 의식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은 차들이 들락거리는 요인이 된다.
이미 있는 것들을 보존하면서 미래의 가치를 위해 보존할건지 개발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하지만 마땅히 잘 보존해서 후세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내지 말고 관통도로가 계획단계, 준비단계에 있을 때 최대한 확실하게 막아야 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