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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 Oct 21. 2019

"장모님, 혼자 괜찮을까?"

나보다 힘센 엄마

    

치매 판정을 받은 엄마가 우리 집에 온 다음날. 그날은 유성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예전부터 유성 오일장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집에서 유성장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다.

엄마와 나 그리고 남편, 우리 셋은 유성장에서 큰 길 건너 가까운 교회 앞에 차를 세웠다. 장을 보고 엄마가 좀 더 걸을 수 있다면 천천히 구경하면서 녹두부침개도 같이 먹자고 했다. 날씨는 맑았다. 엄마는 50여 미터를 채 걷기도 전에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허리가 아파서 못 가겠네. 둘이서 같다 와."     


엄마는 교회 계단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마침 교회에서 주차장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엄마를 보자 "할머니는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것네요, 날씨도 좋아서 장에 오늘 사람 많던데요, 목 마르시면 저 짝에 물도 있어요" 한다. 자신 있게 유성 오일장에 가자고 했던 엄마는 풀이 죽었다.     


"엄마, 여기서 기다려, 우리 올 때까지 어디 가면 절대 안 돼요."     


엄마는 딸집에 신세진다는 생각보다 뭐라도 도움을 줄 명분이 필요했다. '너희 집에 가면 니 살림은 내가 다 해줄게'라고 수시로 말했던 엄마. 손이 놀고 있으면 지난날의 회한(?)이 엄마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 같다. 장을 길게 둘러볼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고추 다섯 근을 샀다.     

고추아저씨는 한 근에 1만7000원짜리를 1만6000원에 줬다. 마늘은 중간짜리로 세 접을 샀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 길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왕에 왔으니 골목을 돌아서 돼지껍데기를 사고 쌀 뻥튀기도 살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장모님 혼자 괜찮을까?"    

 

고추와 마늘까지 사놓고 다른 가게를 기웃거리자 시간이 지체됐다. "괜찮겠지~"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낯선 곳에 혼자 앉아 있는 엄마가 우리를 찾아나서기라도 한다면? 갑자기 불안감이 덮쳤다. 엄마는 휴대전화도 없고, 주소가 적힌 목걸이나 팔찌조차도 없다. 치매 노인으로는 완전 무방비 상태다. 시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넜다. 마음이 급했다. 교회건물 계단에 앉은 엄마가 우리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달릴 듯 걸었다.     

 

"엄마~ 누가 납치해 갈까봐 막 뛰어 왔어"라고 하자 엄마는 천진스럽게 입이 벌어졌다.

"호호... 따라 오란다고 내가 갈 사람이니? 나 이래 봬도 아직 정신 말짱해."     

내게 실고추 만들기는 어림없는 일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당장에 고추를 쏟아놓고 꼭지를 땄다. 고추를 닦아가면서 "참 좋네, 고추 잘 샀다, 근이 잘 나오겠어"라고 했다. 잘생긴 고추 10개 정도를 따로 빼고는 실고추 만들어서 뒀다 먹으란다.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삭삭삭...’ 엄만 벌써 실고추를 만들고 있었다. 칼끝에 가늘게 떨어지는 실고추, 소리도 재밌게 경쾌하다. 나도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래? 이거 쉬워 보여도 힘 많이 들어가."


도마 앞에 앉아 칼을 쥐었다. 엄마가 씨를 뺀 고추 앞뒤를 잘라 두세 개를 겹쳐줬다. '삭, 삭, 삭'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소리. 고추는 내 손에서 실고추가 되지 않았다. 잠시 내가 하는 모양새를 바라보던 엄마에게 다시 칼이 돌아갔다.     


"내가 고목이어도 힘은 너보다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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