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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 Dec 06. 2019

한밤중에 느닷없이 우는 엄마

엄마의 치매는 어디까지 왔을까.

새벽 한시, 화장실로 향하는 발작 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나는 누운 채, 엄마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쯤, 엄마는 신었던 욕실화를 가지런히 세워놓을 것이다. 톡! 화장실 불을 끄고 침대방으로 발을 옮기는 소리까지 내 안테나는 엄마의 동선을 따라간다.    

  

낮에 집을 비우고 저녁에 와 보니 주방 한 구석에 믹스커피 껍데기가 있었다.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려고 뚜껑을 여는데 거기에도 껍데기가 있었다. 굳이 화장실 휴지통에 버린 건 엄마 딴엔 머리를 쓴 것 아닐까싶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권하는 내게, 엄마는 '커피는 안 마실래. 속이 떨리고 잠도 안 와'라고 사양했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엄마한테 커피를 마셨는지 넌지시 물었다.     


“응, 안마실까 하다가 딱 한 잔 마셨지.”     


엄마의 거짓말에 내 입 꼬리가 올라간다. 아주 안 마셨다는 건 너무 뻔히 드러난다는 걸 당신도 기억하는 것이기에. 주무시는 줄 알았던 엄마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잠이 안 오니 괜히 하릴없이 거실을 서성인다. 나는 낮고 부드럽게 밤이 늦었는데 주무시라고 말했다.     

 

“응, 그래, 나 이제 가서 잘게~.”     


엄마목소리가 말 잘 듣는 착한아이 같다. 나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엄마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언니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흑... 나, 니 언니한테 사과해야 돼. 내가 그 앨 많이 때렸어. 그 어린 게 뭘 안다구 내가 때렸을까, 그 어린 걸... 어흑흑흑.”     


조금 전까지와는 너무 다른 낯선 엄마. 나는 옆에 앉아 손을 잡아드리고 한 손으론 어깨를 감쌌다. 흐느끼는 엄마에게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언니한테는 내일 사과하자고 했다.     

 

오십년도 더 지난 그 시간. 나는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세 살 터울이니 언니가 이제 2학년이나 됐을까. 울타리에 심은 포도나무의 열매가 영그는 한여름, 문이 열어젖힌 방에 언니와 내가 무릎을 꿇었다. 뒤따라 들어온 엄마가 방문을 닫았다. 창호 문이 떨어질 듯 세게 닫혔다. 그 소리만큼 화가 난 엄마. 손엔 싸리가지로 만든 매가 들렸다.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다. 엄마가 악을 쓰며 매가 공중으로 들리는 순간, 언니가 재빨리 엄마 손의 매를 잽싸게 잡아챘다. 그리고 순식간에 뚝, 꺾어지는 매. 동시에 문을 박차고 나간 언니는 신발도 신지 않았다. 엄마가 언니를 쫒았다. 두 여자가 뛰쳐나가고 나는 팽팽했던 긴장과 공포로 얼이 빠져 텅 빈 방에 혼자 남았다. 무릎 꿇은 다리가 저렸다. 나는 엄마와 언니를 기다리며 청승맞게 울었다. 그리곤 까무룩 잠을 잤던 것 같다.    

  

엄마가 울면서 언니 얘기를 하자마자 나는 이 장면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우린 무슨 잘못을 그리 했을까.     


“사는 게 힘들 때, 니 아버지한텐 뭐라 못하고 니들 셋 중에서 그래도 니 언니가 큰 애라 많이 맞았어. 너는 약하고, 니 동생은 어리니, 언니를 그렇게 때린 것 같아.”     

 

흐느낌이 잦아들고 다시 착한아이가 된 엄마는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일상의 일들을 연거푸 말해도 곧 잊어버리는 엄마가 수십 년 지난 일을 기억하며 울다니. 엄마의 기억 저편엔 또 어떤 것들이 튀어나올지 막연히 불안하다. 엄마의 치매는 어디까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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