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싸인까지, 나 아직 멀쩡해

엄마의 이야기 그림으로 기록하다.

by 황토

엄마는 한국전쟁시기에 혈혈단신 월남한 아버지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3남매를 낳고 헌신하며 희생한 엄마의 인생은 매 순간 고난의 옹이가 곡절로 이루어지지 않은 게 없다. 남다른 생활력과 호기심이 왕성했던 엄마에게 치매는 어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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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번, 엄마는 같은 질문과 걱정을 반복했다. 밤이 되면 그 대상이 아들 진영(가명)이와 ‘두부’에게 집중됐다. 두부는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샵을 통해 입양한 엄마의 반려견이다. 진영이는 거의 날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이 머무는 시간은 겨우 5분, 아니 3분 정도다. 금방 아들과 통화를 해놓고도 그 순간이 까마득히 사라진다. 엄마에겐 시간 개념 자체가 무색해진 것 같다.

“얘가 오늘은 전화를 안 하네. ‘두부’ 운동시킨다고 데리고 나가서 연락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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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도돌이표가 되어 엄마 머릿속을 돈다. 나는 엄마와 진영이가 금방 통화를 끝냈을 때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아들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두부는 지금 어디 있는지를 재빨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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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이는 바쁘대. 두부는 서산 니 언니네 있잖아. 걔는 아마 나 오기만 기다릴 거야.”

나는 엄마가 진영이와 금방 통화했고, 언니네 집수리가 끝나면 진영이가 엄마를 모시러 온다는 걸 적었다. 그 글 옆에 빨간색 연필로 사인을 하라고 종이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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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 뭔 싸인까지 한다고, 그거 안 해두 알아~. 나 아직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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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웃으며 내가 내미는 A4 종이에 당신의 성을 쓰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엄마가 사인하는 방법이었다. ‘오’라는 한 글자가 빨간 동그라미 안에 갇혔다. 마치 엄마의 기억이 갇힌 것처럼.


(*) 엄마의 사라지는 기억을 기억하며 쓰고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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