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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Dec 08. 2015

둘째 날, 기어이 호찌민 묘 방문

04. 어드벤처 in 베트남 -  호찌민 박물관 대신 민족학 박물관으로

- 지난 줄거리 -

2시간 넘게 지연된 비행기를 탄 성철, 간신히 하노이 구시가지와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탐색했는데...


연재의 처음에서 밝혔지만, 하노이행을 결심한 건 호찌민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 방문처 중 제 1번 방문처 역시 호찌민 묘였다. 그래서 모든 일정의 중심에 호찌민 묘 방문을 두고 계획하기도 했다.

또 호찌민 묘는 오전 11시면 문을 닫는다. 이미 수십 년째 시신을 보관 중이기도 하고, 지금의 베트남이 있을 수 있게 만든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방문이 가능한 시간대라도 규정이 엄격하다. 반바지 등 노출이 심한 옷차림, 사진 촬영 등은 불가다.


5일 토요일 출발해 8일 화요일 귀국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볼 수 있는 날은 일요일 하루뿐이었다. 토요일은 이미 저녁 도착이니 방문 불가, 월요일은 휴관일, 화요일은 2시 비행기로 귀국이라 오전에 꽤 부지런히 움직여야 볼 수 있었던 상황.

처음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전 8시에 방문할 생각이었다. 듣기로 입장 줄도 꽤 길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장시간 지연과 비행은 나의 피로도를 팍팍 높여주었고, 아침이 됐는데 너무너무 일어나기 싫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9시 30분이 넘어서야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로비에서 나를 찾아온 한국분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하노이에 있다가 브런치 연재를 보고 찾아왔다는 말에 놀랐지만 약간의 베트남어와 여행팁, 이동 경비 등을 지원받게 됐다.(마음이 급해서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호찌민 묘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0시가 좀 넘은 상황, 딱 봐도 입구에서부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입장할 때 소지품 검사까지 하는 상황. 내 경우는 생수 소지로 제지를 당해 입구에 두고 가야 했다. 또 휴대폰은 가능하지만 카메라는 불가라서, 입구에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10분 정도 정해진 길을 따라 줄줄이 걸어가면 묘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곳곳에 군인들이 서서 통제를 하는데 사람들이 말없이 따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물론 경건한 마음을 갖고 오는 장소지만).  건물은 커다랗지만 시신이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30평 정도의 방안 한가운데 호찌민이 누워있고 역시 군인들이 위치마다 서서 통제를 하고 있다. 입구와 출구가 달라 한바퀴를 도는 식으로 걸어가며 보고 바로 나가야 했다. 조명 때문인지 묘한 기운이 나서 내가 멈춰서 바라보자, 바로 군인이 와서 이동하라고 손짓했다. 또 내가 키가 커서 그런가 자꾸 뒷 줄(두 번째 줄)로 보냈다. 그럴 때마다 말 한마디 안 하고 다가와서 팔꿈치를 툭 치고 손짓하는 것이, 은근히 위압적이었다. 


10시 10분쯤 정문 입장, 10시 20분 정도에 건물에 들어선 거 같은데 10시 30분에 묘소 밖으로 나왔다. 묘소를 나오면 발로 이어서 주석궁, 생가, 박물관 등을 관람할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이어서 관람을 원하면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면 된다(묘소는 입장료가 없다). 생가와 주석궁(입장 불가),  박물관의 입장료는 4만동. 2만 5 천동이고 알고 있어서 매표소 쪽을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 인상됐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호 아저씨가 살아 있던 당시의 생가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커다란 정원과 공원처럼 구성이 돼 있다. 역시 길을 따라 이동하면 주석궁과 생가+집무실 등이 나온다. 사전에 하도 검소하단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워낙 코스 구성을 잘해놓아서인지, 엄청나게 검소하다는 느낌은 잘 못 받았다. 감흥이 크지 않았다. 작은 방에 침대, 책상, 책장 정도의 가구에 라디오, 전화, 책 몇 권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재밌는 것은 회의실이 야외에 있었다. 원래 전기공이 쓰던 건물이라 들었는데 집이 크지 않아 회의실을 둘 곳이 없다. 요즘 식당들 1층에 주차장 두듯이 1층은 비어있고, 2층이 생활공간인데 바닥 아래 빈 공간이 회의실이었다 한다.

이걸 보고 궁금한 점 하나는, 그렇다면 전기공은 어디로 갔을까, 였다.


하노이의 박물관들은 오전 11시에서 2시 사이에 잠시 문을 닫는다. 그런데 생가터를 다 보고 나왔을 때 이미 11시가 넘은 상황이었다. 원래 계획에서는 호찌민 박물관까지 다 보고 나왔을 때 11시가 되고, 이어서 문묘를 방문해야 했다. 도보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문묘를 보고 점심을 먹으면 바로 이어서 미술박물관, 군사박물관 등등을 방문할 수 있는 일정이 나오기 때문. 문묘는 휴식시간이 없다.

아마 내가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면 호찌민 박물관을 보고 나왔을 때 11시가 됐겠지.


바로 붙어있는 못꼿사원을 보다가 용과를  사 먹으며 눌러앉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민속학박물관을 갈지, 근처의 박물관들을 마저  관람할지.

결국 민속학박물관으로 갔다. 실제 이동해보니 문묘에서 택시로 15분 (4.7km - 56000동) 정도 걸렸다. 또 관람 규모가 커서 3시간 정도 봤는데도 다 못 봤다. (여기에는 약간의 취향 문제도 있다. 나는 관심이 조금 생기면 한 전시물에 멈춰서는 경향이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게 많았다. 멈추지 않고 실내외 전시를 모두 본다 해도 대략 2시간은 걸릴 듯)


제 1 목표였던 호찌민 묘와 생가를 보고 나니 호찌민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다. 아예 시간을 길게 쓰면서 거리와 문묘를 구경했다. 문묘 가는 길에는 웨딩홀들이 있었는데 마침 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슬쩍슬쩍 구경했다. 문묘에서는 학생들의 졸업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단체로 와서 사진을 촬영하는데 이것도 재밌어서 앉아서 구경했다. 여학생들은 아오자이를 입고 남학생들은 정장을 입더라.


민속학 박물관은 베트남에 있는 50여 개 민족의 문화를 정리한 곳이다. 의복, 악기, 풍습(신앙, 장례, 제사 등) , 주거 관련 물건들이 전시돼 있고, 일부 풍습 등은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었다. 압권이었던 것은 야외에 전시된 민족별 주거형태였다. 실제로 10여 개의 집을 지어놓았고 대부분 직접 내부에 들어가서 확인까지 할 수 있었다. 내부 전시도 전시였는데, 이거 보는 데도 시간을 많이 썼다.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보는 재미가 배가 됐을 법한, 괜찮은 전시물이었다.


민속학박물관 옆에 있는 전시관에서는 동남아시아 국가별 민속 전시가 있었다. 3개층인가에서 전시 중이었는데 1층을 간신히 봤을 때 시간이 다 됐다며, 쫓겨났다. 5시 45분쯤이었는데 궁금해서 잠깐 뭐 있는지만 올라갔다 온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쫓는 양반이 영어가 잘 안 돼서 나도 포기.


 숙소 근처로 돌아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분보남보(요리명이자 식당명)에서 식사를 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고민했던 것이 먹거리였다. 제대로 된 현지 음식과 맛있는 요리 사이에서 헷갈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제대로란, 베트남 하노이 사람들이 먹는 로컬, 현지, 정통, 평범, 일상, 보편화된 요리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고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고수가 없는 요리가 먹기 더 수월하긴 하지만 그들이 오랜 세월 먹으면서 만들어진 형태가 그것이라면, 그대로를 먹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해서 되도록 주는 건 다 먹어본다(사실 인간적으로 못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수많은 블로거들이 추천하는 맛집을 보며 여행을 준비하는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현지 음식을 잘 하는 집과 맛집은 엄연히 다르니까.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한국에서 밥을 먹더라도! 심지어 우리 동네에서 먹어도  맛없는 집은  맛없다는 사실!!

로컬인도 안 먹는 집은 아닌 거 아닌가.


일부러, 일정을 쪼개가며 식당까지 코스에 넣어 여행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다니다가 소위 맛집이 등장하면 '아 이 집이 여깄구나' 하고 먹고, '오늘은 요거 먹어봐야지'하면 대충 눈치 봐서 현지인들이 많은 집이 있으면 같이 껴서 먹는 거다.


라고 했는데 분보남보가 맛있긴 맛있더라.


이 글은 둘째 날 내용이지만 3일째 지내면서 알게 된 사실을 공개하자면 이렇다.

하노이 호안끼엠과 구시가지(올드타운) 등을 잘 돌아다니다 보면 같은 종목의 집들이 근처에 몰려있다. 괜찮은 커피를 파는 가게가 이 골목에 있으면 앞뒤 좌우로 커피집들이 주루룩 있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다들 똑같은 음식 이름을 적은 간판을 걸어놓고 장사를 한다. 한국도 그렇지만, 사람이 다 똑같지. 사람 많은 집 가면 된다. 하노이도 똑같다. 가게 앞부터 시작해서 길 여기저기에 의자를 가득가득 깔아놓고 파는 집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메뉴를 파는 옆집인데도 텅 비어있는 경우도 있다. 엇비슷할 때는 여러분의 포스에 의존하라. 

포스팅 말고.


왜냐하면.

나 같은 경우에는 어제 문묘 앞에서 분짜를  사 먹었는데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고수를 발견했다. 내가 제대로 묻고 들었다면 그 야채의 이름은 '옹' 이었다. 만약 내가 '옹' 예찬론을 쓴다, 누군가가 반함, 작정하고 찾아감, 먹기도 전에 헛구역질, 짜증, 후회, 미움, 난 나쁜 놈, 정보 신뢰도 하락, 멘탈 흔들림, 소심해짐, 쉽게 피로, 아 하나도 재미없어, 뻥쟁이, 집에 가고 싶다, 여행 전체의 기억이 악몽, 야 하노이 음식 완전 구려, 가 돼 버릴 수도 있으니까.


최근 하노이 여행 준비 중인 사람들은 알겠지만, 너무 유명해서 홍대 어디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분짜닥킴 역시 최근에 부정적인 포스팅이 늘어나고 있더라.

사람은 다 다르다.

방금 전에 사람은 다 똑같다는 둥, 아시아가 하나네 했지만 '취향'은 분명 모두 다르다는 점.

내가 몇 개의 박물관을 포기하고 민속박물관을 갔지만 만족했던 것과 분짜닥킴 대신 지나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고수가 마음에 들었던 것 등은 박물관의 내용이 정말로 좋고 그 고수가 엄청 맛있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먹은 분짜는 4만동, 50m 더 갔을 때 분짜집 몇개가 모여있는데 2만 5 천동에 팔고 있었다. 또 이번에 먹은 고수 중에는 정말 참기 힘들어서 헛구역질이 나는 것도 섞여 있었다.

내 사고와 감정의 흐름은 이랬다. 분짜 주세요, 야채가 한가득, 오 이 고수는 맛있네, 이것도 먹어봐야...헛구역질, 아 이건 못 먹겠, 4만동, 그래도 잘 먹었다, 터벅터벅, 어? 여기 식당 많잖아, 어! 왜 2만 5 천동이야, 아 다음부터 좀 더 찾아보고 먹어야지, 문묘나 보러 가자, 망각, 와 졸업식 한다, 재밌다, 다음은 어떤 모험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하노이 선택 잘 한 듯, 난 역시 짱, 브런치, 내가 말이야,


킹왕짱.


이 되었다는 이야기. 



- 내가 먹을 건 내가 정한다! 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요즘입니다. 구경 다니기 은근 바쁘고 인터넷이 삐걱대서 하루 밀렸습니다. 벌써 현지 시각 2시. 사진과 이어지는 나머지 이야기들(아마도 셋째 날 일정과 몇 개의 에피소드)은, 한국에 돌아가서 정리하겠습니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아 벌써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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