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철 Dec 18. 2015

셋째 날,  발길 가는 대로 하노이

05. 어드벤처 in 베트남 - 하노이의 평화를 지키는 제다이가 되자

- 지난 줄거리 -

하노이에 간 성철은 수 많은 박물관을 포기하고 민속학박물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기분이 한껏 좋아졌는데.,.


3박 4일의 일정이지만, 마지막 날 2시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여행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내가 있는 호안끼엠이 아니라 호떠이 호수 쪽도 가보고 싶었지만 동선을 줄이고 한 곳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십여 년 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 범했던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혼자 대만과 태국을 여행했는데, 유명하다는 관광지(유적지, 박물관 등)만 보다가 지쳐버려서 여행의 재미가 똑 떨어진 일이 있었기 때문.  결국 그때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시간을 보내며 재미를 되찾았다. 국내 여행도 그렇지만 짧은 시간에 정해진 코스대로 움직이다간 체력만 떨어지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긴다. 혼자서 생각해보며 내린 가설은 이랬다.


하나,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정보의 용량이 있어서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정보가 스트레스가 된다.

둘, 나 자체가 큼직큼직하고, 빠르게, 많은 것들보다는 천천히 작고 아기자기한 것을 선호한다.

셋, 활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선호한다.

넷,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둘째 날, 다른 호찌민 박물관이나 전쟁박물관 등등을 포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여러 개 보면서 기운 빼느니 하나를 집중해서 보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긴 이야기를 뒤로 하고 드디어 나선 호텔.

오늘의 과제는 크게 3가지였다. 수상인형극 관람, 서점과 도서관 구경,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편지 보내기. 모두 호수 주변을 빙 둘러 있어서 도보로 여유 있게 이동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 또 월요일은 대부분의 관광지가 쉬기 때문에 사실 갈 곳도 별로 없다.


어쨌거나 가장 먼저 수상인형극장으로 향했다. 인기가 많아서 당일 표도 구하기 힘든 날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원래 전날 예매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 당일 예매에 도전. 놀랍게도 가뿐하게 예매에 성공. 3시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다. 예매를 마치고 호안끼엠 호숫가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하노이와서 처음으로 낮 시간에 산책다운 산책을 즐겼던 시간이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스타워즈 분량의 에피소드들이 쏟아졌다.



파 파 파러웨이 인어 갤럭시....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하노이 사람들은 따뜻한 오리털 파카를 입지만, 나는 시원하게 반팔을 입고 나섰다. 나에겐 분명 우리나라 5월 정도의 날씨였는데, 그들은 목도리도 하고 비니도 쓰고 그런다. 안 그래도 딱 보면 티가 나는 코리안이다 보니 주목을 받는데 반팔을 입고 나가니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오토바이 아저씨도 한 번 태워주겠다며 '헬로'

구두 닦는 아저씨도 신발 닦아주겠다며 '헬로'

택시 아저씨도 택시 타라며 '빵빵'

베트남 아가씨들은 반갑다고 '안녕'

응 나도 안녕!


관광지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반인들도 짧게 짧게 한국어를 하더라. 한류라는 게 참 무섭다.

이런 와중에 셀카봉 한 번 꺼내면 말 그대로 시선집중이다. 다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셀카 찍는 나를 흉내 낸다. 내가 그렇게 좋은가.

짱띠엔 백화점 옆에서 -가게 위치를 잘 몰라도 아이스크림 들고 나오는 인파를 보고 자연스럽게 찾아가게 되는 바로 그 집에 가서 - 아이스크림 먹다가 내가 셀카봉으로 사진을 딱 찍었더니만, 사람들이 또 나를 가리키며  중얼중얼했다. "너네들, 같이 한 방 찍을래?" 하고 싶었지만 용기를 못 냈다. 대신 아이스크림 먹다가 손잡이 부분 과자를 흘렸는데,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않기 위해 멋지게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오비완 카노비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포스의 어두운 기운을 잘 통제하고 훌륭한 제다이 기사가 되길 바랐다.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한국에서도 혼자 거리를 걷다 보면 참 많은 질문을 받는 편이다. 시청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해요, 같은 질문은 괜찮은데 꼭 '복이 많다'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인데요'라거나 '큰 일을 하실 분'이라거나, '남의 밑에 계실 분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도 잘 알고 있다. 난 복도 많고, 큰 일을 할 것이며, 남의 밑에 있을만한 그릇이 못 된다. 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학도'라는 것도 잘 알게 됐다. 좋은 얘기도 자꾸 하면 싫어지는데 그들은 왜 내 마음을 모르나.

이러면서 일종의 레이더 같은 것을 갖게 됐다. 멀리서부터 '복이 많은 사람'을 찾는 그들을 구분해낼 수 있게 됐고, '큰 일을 하실 분'을 붙잡고 이야기 중인 광경도 자주 목격하면서, 몇 가지 '회피술'도 익혔다.


그 런 데

하노이에도 있었다. 여유롭게 호숫가를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하는데...아니 글쎄 두 명의 베트남인 학도가 다복한 누군가를 붙잡고, "선생님 가진 복이 많으니 저희 좀 나눠주세요"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복이 많은 그는 거절하였고, 2인 1조로 구성된 그들은 한국의 그들이 거절당할 때와 똑같은 표정과 자세로 물러났다. 정말 놀란 건 특유의 옷차림까지 비슷했다는 점(조금은 크고 오래 입은 듯한 셔츠+기지바지+편한 신발+크로스 가방).


클론 트루퍼도 처음에는 공화국 군대였지만, 후에 제국군이 되어 제다이들과 맞서게 된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역시 점점 포스의 어두운 기운이 커져만 간다.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호수 남쪽으로 걷다가 건너편을 보니 광장과 큰 동상이 하나 보였다. 아마 책에서 봤던 리타이또 황제 동상 같았다. 리 왕조의 태조이자 하노이를 수도로 삼았던 인물. 한적하고 사람도 없길래 천천히 동상 주변을 구경했다. 그때 한 베트남 사람이 아주, 굉장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유쾌하게 영어로 말을 걸며 다가왔다. 50%의 노홍철 에너지를 가진, 베트남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자신은 교사인데,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며 시간을 내줄 수 있겠느냐고 한다. 처음 동상 쪽으로 갔을 때 다른 외국인과 이야기 중이길래 가이드인 줄 알았는데 관광객 대상 설문조사를 하는 사람이었던 것. 사실 월요일 대낮에 밖에 나와있는데...교사라길래 좀 이상했다. 말도 횡설수설하길래 대학원생인가 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베트남의 미래를 위해 설문지를 받아 들었다. 아 또 이 사람도 나보고 차이니즈인 줄 알았다고 하길래 기분이 좋아져서 설문 작성을 시작했다!

설문지도 이상했다. 영어로 작성된 그 설문지는 '호찌민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었다(호치민시와 하노이시는 가깝지 않다). 그래서 물으니 '하노이'로 바꿔서 읽으면 된다고하여 다시 설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며칠 여행이냐, 무엇을 주로 관광하느냐, 도시의 느낌, 치안 등이 어떠냐, 여행 경비의 지출 중 어떤 것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느냐 등등. 내가 설문지 작성을 다 끝내자 그는 자신이 적십자 소속의 단체에서 활동 중인데 맹인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노트를 꺼낸다. 거기에는 이미 돈을 냈는지 어쨌는지 모르는 외국인들의 이름과 국적 등과 기부액이 나와있다.

아, 그럼 처음부터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해달라고 하던가. 이렇게 된 거 5분간 즐거운 대화도 나눴으니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내야겠다 싶어서 이름을 적고 있는데 이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먼저 적힌 기부액들의 액수가 몇십만 동 수준이다. 또 주머니에서 뒷면에 레드크로스가 그려진 신분증 같은 걸 꺼내면서 말하는 폼이 거액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여 과감하게 펜을 내려놓고, 돈을 안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정색을 한다. 다 나한테 돌아오는 거라고. 참 좋은 말 이기는 한데, 기분이 더 나빠졌다. 하여 뿌리치고 나서는데 베트남어로 무언가  중얼중얼거린다. 정황상 분명 안 좋은 말이었겠지만, 씁쓸한 마음을 안고 자리를 떠났다.


아, 결국 아나킨은 다스베이더가 될 운명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길고도 슬픈 시간들을 아나킨은 왜 몰랐던 것이냐.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인형극을 보기 위해 다시 호수 북쪽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부터 한 베트남 사람이 친한 척을 하며 다가온다. 이번엔 또 뭔가 하고 보니 "니하오, 니하오마" 하고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기분전환이나 해야겠다 싶어 신나는 마음에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그러더니 베트남 남자는 대뜸 "니 찌아오 션머 밍즈?(너 이름이 뭐냐?)"하였다. 하여 내가 신이 나서 "워 찌아오 찐쳥져(난 김성철)"했더니 "니 라이 베이징?(너 베이징에서 왔지?)"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다시 정리하다 보니 베이징에서 왔다고 하고 더 장난을 칠 것을, 솔직하게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웃으며, 중국인인 줄 알았다고, 투어 관광 안 하겠냐고 한다. 아 신선한 접근이었지만 내용이 실망스러웠다. 단박에 거절하고 가던 길을 갔다.


우리들의 친구 루크 스카이워커는 포스의 힘을 발휘해 제국군의 데쓰 스타를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인형극 표를 예매하고 응옥썬 사당 근처에 이르렀을 때 길에서 베트남 장난감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안 그래도 베트남 색이 물씬 나는 물건들을 찾고 있던 터라 보니 줄로 당기면 팔다리가 움직이는 신나는 장난감이 있었다(나중에 수상인형극을 보니 극의 인형들이 같은 원리로 움직이더라). 가격을 물으니 4만동(우리돈 2천원).

흥정을 시작했다.

나: 2만동

할머니: 노, 4만동. (작은 장난감을 하나 더 얹으며) 이거랑 같이 줄게.

나: 노. 그냥 2만동에 그거 하나.

할머니: 노. 3만 5천동.

나: 노 2만동 아니면 안 삼.

옆 사람들까지 합세: 3만동에 줄테니까 사가.

나: 노. 저 이만 갑니다.

할머니: (뒤통수에 대고) 오케이 2만동.

나: 땡큐. (주머니에서 돈을 건넴)

할머니: (돈을 받자마자 구기며 황급히 주머니로)


다쓰 베이더가 이끄는 제국군이 너희 공화국 반란군을 가만히 내버려둘 것 같으냐.

아이 엠 유어 파더.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손에 장난감을 들고 응옥썬 사당을 보려다가, 빠르게 돈을 구기던 할머니의  손동작이 다시 한 번 머리에서 재생되며 '아차' 싶었다. 얼른 주머니 속 지폐를 확인해보니 내가 낸 돈은 2만동이 아니라, 20만동.
아마 30초도 지나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와 그 일행들은 이미 짐을 싸고 두 발자국 정도 움직인 상태.

마음이 급해진 난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나: 아 잘못줬어 잘 못줬어.(손을 내밈)

할머니: (당황)...

나: (2만동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머니.


내 머니 20만동을 할머니가 바로 주머니에 꺼냈기에 상황 종료.


(베트남의 화폐는 1000, 2000, 5000, 10000, 20000, 50000, 100000, 200000동 짜리가 있는데, 모두 똑같이 호찌민 아저씨 얼굴이 그려져 있고 색과 크기만 조금씩 달라서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에 '0' 하나 잘못 보고 실수하는 경우가 잦다고 합니다. 저처럼요.)


 아빠이자 다스베이더인 아나킨은 악당왕 시디어스를 물리치며 죽게 되고, 루크 스카이워커의 활약으로 은하계에는 평화가.



- 글이 점점 정신 없어지는 것 같아 슬픕니다. 에피소드들은 원래 따로 정리해서 번외편으로 쓰려고 했는데 스타워즈 에피소드7 개봉을 기념해 셋째 날 이야기에 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셋째 날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지요. 인형극 관람과 서점, 도서관 방문, 기타 식당과 물건을 샀던 일들도 차례차례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사진 정리도! 역시 하노이에서 다 쓰고 왔어야 하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여행기 정리하는 일이 더 어렵군요. 다시 뵙는 그날까지 안녕히.-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 날, 기어이 호찌민 묘 방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