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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Sep 16. 2015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기

비엔나텍스트어드벤처 04. 알 수 없는 마음

올해 초에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아버지 환갑 기념으로 다녀온 가족여행이었다. 나는 두 분이 동남아라도 다녀왔으면 싶었지만 어머니는 네 식구가 다같이 가는 여행을 원하셨다. 목적지는 부산. 당일치기였다. 당일치기라고 해도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가 다음날 새벽 1시에 돌아오는 일정이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체력적인 부담도 있었고, 피곤하고 예민해지면 작은 일에도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될까봐서였다.

여행 방식도 내가 선호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시티투어버스로 여행하는 방법을 강력 추천했다. 나 개인적으로 여행은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그 도시를 느껴야 한다는 생각인데, 버스를 타고 정해진 코스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에 정색하고 반대했다. 게다가 기차도 2시간 넘게 타는데 버스로 하루종일 이동했을 때 받을 피로감 역시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거기다가 부모님은, 아쿠아리움 관람,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식사하기, 같은 조건도 내세우셨다. 내 입장에선 부산까지 가서 꼭 해야하나 싶은 선택들이었다. 열심히 주장해서 내가 따낸 부분은 오후에 국제, 부평 시장 등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일 정도였다.

생각과 달리 여행은 즐거웠다. 어릴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네 식구가 긴 시간을 함께하는 하는 여행이었는데도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잘 보냈다. 특히 정말 놀랍게도 아쿠아리움은 이번 여행 최고의 선택이었다. 1시간 조금 넘는 시간동안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고 애들처럼 서로를 불러가며 여기저기를 신나게 구경했다. 이날 여행의 첫 코스여서 다들 체력적 여유가 있었고 내 동생말고는 모두 아쿠아리움이 처음인 탓도 있었겠지만, 아쿠아리움 자체가 주는 재미도 꽤 괜찮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이 가오리 한 마리에도 신이 났다.


반면에 내가 선택한 코스에서 우리는 지루해하고, 힘들어했다.
우리 가족은 30년 넘게 같은 식단을 공유했는데 서로의 기호를 잘 모른다는, 놀라운 사실도 발견했다. 정확히는 내가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단순히 회를 좋아하신다는 것만 알았지 일식집처럼 정찬으로 나오는 집은 선호하지 않으시는지, 식당을 찾을 때 어느정도까지의 수고를 허용하는지, 어떤 서비스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는지, 취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국제시장에 갔을 때는 정말 부끄러웠다. 재래시장 곳곳이 나에게는 신나는 구경거리였는데 부모님은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으셨다. 내가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함께 흥미를 붙이시길 유도했지만 별 반응이 없으셨다. 시장에 들어온 것만으로 재미의 시작이자 끝인 나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셨다. 그날따라 기온은 뚝 떨어졌고 어머니도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하셔서 국제시장에서는 30분 만에 철수해야했다.

취향의 문제는 마지막 코스였던 야경투어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또 한 번 발생했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도 여유가 있고 허기를 느낀 우리는 부산을 떠나게 전에 밀면을 먹기로 했다. 원래 여행 전부터 얘기는 나왔지만 우리 코스 상에 이렇다할 밀면집이 보이지 않아 밀면 먹기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또 밀면이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내 딴에는 기왕이면 제대로된 집에서 드시게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나마 부산역 앞에 밀면집을 본 기억이 있어서 찾아가려는데 부모님은 어떤 집이건 '밀면' 글자만 보이면 들어가려고 하셨다. 내가 "밀면도 전문점에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몇 집을 지나쳤지만 5분쯤 지나자 부모님은 눈앞에 보이는 가까운 식당을 선택하셨다. 내가 정말 기피하는, 세상 온갖 음식을 다 취급하는, 만능분식집을 거침없이 들어가셨다. 그 집에는 밀면말고도 보리밥부터 충무김밥 등등 모든 사람의 기호를 충족시켜줄 메뉴를 구비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기분을 꾹 누르고 잠자코 따르기로 했지만 나는 사실 밀면을 입에 넣는 순간 기분이 팍 상했다. 정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국수와 냉면과 밀면의 어딘가쯤에 걸쳐있는 그런 음식이이었다. 아 그런데 부모님은, 특히 오늘의 주인공이신 아버지가 흡족해하셨다. "면이 다르던데, 나는 맛있었어"라는 소감까지 밝히셨다. 나 때문에 일부러 하신 말씀인지 정말 맛있게 드신 건지는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열차에 다시 올라탈 때까지 부산역에서 파는 주전부리를 사다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눕는 순간까지 웃고 떠들며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기분 좋게 일어나서 전날을 곱씹었을 때는, 나로 인해 부모님이 기뻐하신 손에 꼽는 경험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대로 그간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무심했는지도 느꼈다.
그래서 여행 후 한동안은 부모님을 관찰하는 데 신경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아버지는 무청을 좋아하시고, 어머니는 과자를 좋아하시지만 쿠키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기까지다. 아마 나는 부모님과 이별하는 순간까지 알지 못할 거다. 슬프지만 분명히 그럴거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해서 알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면 부산 여행에서 잠깐씩 찾아왔던 즐거운 접점들처럼, 남은 경험들이 서로에게 기쁘고 감사하게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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