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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Sep 03. 2015

그래, 여기 도서관이 있었어

비엔나텍스트어드벤처 03. 도서관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은 무슨.

지독한 여름을 견딘 우리는 짧은 가을이 가기 전에 밖으로 뛰어나가 놀아야 한다. 가을은 짧고 겨울은 길다.

그런데도 이 가을에 독서를 해봐야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 저어기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기에 - 그들을 위해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내가 도서관을 출입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던 3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당시 우리 지역은 비평준화여서 중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입시'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다만 내가 고등학교 진학하던 그 해, 초유의 미달사태로 시험에 대한 부담은 없어졌지만 집에서는 방학 내내 빈둥대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이런 이유로 매일같이 집을 나와야 했고 중학생이다 보니 딱히 돈도 없어서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던 시립도서관으로 피난을 갔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가방은 열람실에 두고 곧장 정기간행물실로 향했다. 정기간행물실은 마감시간이 오후 5~6시 정도였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영화 주간지 <씨네 21>을 몇 권씩 꺼내보고 과학동아 같은 책을 읽었다. 게임잡지를 뒤적이며 RPG 게임의 공략집을 옮겨 적던 기억도 있다.

정기간행물실이 문을 닫으면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료실로 올라갔다. 자료실에 가면 당시 한참 인기가 많았던 이우혁의 퇴마록 시리즈나 개미로 유명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자료실도 문을 닫으면 읽던 책을 대출하고 열람실에 가져가서 읽다가 도서관이 문을 닫는 밤 10시쯤에 집에 돌아오곤 했다.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 있었던 아들을 뿌듯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미소와 퇴마록 결말이 궁금해서 집에 오자마자 책상 앞에 앉던 아들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그 겨울은 그렇게 평화로웠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내 도서관.


시간을 혼자 보내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뜨악할 만한 일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도 혼자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고는 하는데 어릴 때에 비하면 요즘 도서관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굉장히 열악한 편이라고는 하는데 우리 동네 시립도서관 초창기 멤버인 내가 보기에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이제는 곳곳에 도서관이 생겨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골라갈 수 있는 정도다. 관심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가까운 도서관을 검색해보자.


그래, 거기에 도서관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미의회 도서관. 여기서 시작한 도서분류법이 세계로 퍼져나갔다.

나도 전국의 공립 도서관을 다녀본 것은 아니나, 대체로 아래와 같이 구성돼 있다.


자료실
신문이나 잡지 등을 제외한 모든 도서가 있다. 도서관에 따라 다른데 자료실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책상을 둔 곳도 있고, 대출실을 따로 둬 관내 열람자료와 대출 자료를 따로 구분하는 곳도 있다. 대출을 하려면 도서관 회원에 가입해야 하지만 열람 자체는 누구나 가능하다. 최근에는 인터넷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자료 보유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없는 책은 도서관에 구입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도서관이 문을 여는 날은 개방하지만 운영시간은 도서관마다 많이 다른 듯하다.

도서 검색을 위한 PC가 비치돼 있어 책 제목이나 저자, 출판사, 키워드 등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책들은 철학, 예술, 문학, 역사, 과학 등 구분에 따라 나뉘어 서가에 꽂혀있고 번호가 붙어 있어서 몇 번 보면 금방 책 찾는 방법에 적응할 수 있다. 책 찾기가 어려우면 사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

아쉽게도 도서관에 만화책(원피스, 드래곤볼 같은 코믹물)은 없다. 어린이 학습만화나 고우영, 허영만 화백 등의 작품은 보유하고 있지만 정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보고 싶다면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만화박물관내 도서관을 추천한다.

열람실
내가 듣기로 열람실의 원래 목적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자료실에 있는 책을 열람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도서관 규모가 작아서 불가피하게 책이 있는 서고와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분리했던 것.

(이런 식으로 생겨난 공간이라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이해가 안 가는 시스템중 하나는, 어째서 열람실에서 책을 보려면 대출해서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건 여기서 논외니 이쯤에서 넘어가겠지만 아시는 분 있으면 속 시원한 답을 부탁드린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최근의 열람실은 각종 고시 공부 및 중고등, 대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 도서관이 완전히 문을 닫는 국가공휴일과 도서관 정기 휴관일을 제외하고 밤 10시, 11시까지 운영한다. 독서실처럼 칸막이 책상이나 여럿이 함께 앉는 넓은 책상을 둬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서관 회원이어야만 이용 가능하다. 요즘은 입구에서 전자 좌석 시스템으로 지정좌석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 곳이 많고 남녀, 학생과 성인 등에 구분을 둔다.

미국 보스턴 국립도서관.


대출실(대출제도)
개인적으로 '책은 빌려 읽고 갖고 싶은 책만  산다'는 주의다. 그러니까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책을 공짜로 빌려주는 제도는 굉장히 훌륭한 제도라는 말이다. 도서관의 조상님, 감사합니다.

전국의 모든 도서관 룰을 모르니 내가 아는 기준으로 설명하면 1인 1도서관 기준으로 3~5권까지, 2주간 대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후 예약자가 없다면 1회에 한해 1주간 연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주의할 점 하나라면 책을 반납하자마자 바로 재대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보통은 3일 정도 지나야 다시 대출할 수 있고 같은 책이 도서관에 두 권 있다면 바꿔 대출할 수 있다. 공립 도서관의 기본 취지가 '함께 읽자'이기에 이런 규정을 둔 것 같다. 그리고 잡지, 신문, 사전 류는 대출 불가다. 가끔 대출하고 싶은 사전이나 잡지가 있어서 혼자 많이 생각해봤는데 ‘함께  읽자’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니 대출이 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됐다.

경기도 부천시 같은 경우에는 지하철 역사에 출장 도서관이 있고, 경기도 안양시의 경우는 무인대출기기가 설치돼 있다.

정기간행물실
개인적으로 참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는 장소다. 패션지, 시사잡지, 영화, 스포츠, 예술 등의 잡지부터 기관 사보까지 어지간한 정기간행물과 온갖 신문을 볼 수 있다. 물론 과월호와 지난 신문도 찾아볼 수 있다. 단점을 꼽으라면 6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는 것.

전자정보실(시청각 자료실)
자료실이면서도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책이 주인공이 아닌 공간이다. 문서 출력, 복사 등이 가능하고 PC 이용, DVD 등 시청각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 정식 발매된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의 DVD를 비치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희망자료 구입 요청을 할 수 있다. 대출은 안 되고 회원에 한해 열람할 수 있게 해준다. 다 좋은데 PC 수십 대가 오픈된 장소에 있다는 점이 아주 살짝 불편하다. 가끔 도서관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데 자꾸 여관씬이 나와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이 있다. 여기도 6시가 되면 문을 닫아서 아쉽지만, 도서관 문을 여는 날이면 항상 이용 가능하다.

아마... 게임하다 걸리면 혼난다.

어린이 자료실
어릴 때 동생 끌고 다니느라 몇 번 가봤는데 어린이와 엄마들과 어린이 책이 가득하다. 요즘 우리나라 어린이 동화책을 참 재밌게 잘 나와서 관심이 많은데, 기회가 된다면 어린이 자료실에서 하루 종일 동화책을 쌓아두고 보고 싶다.

노트북실
최근에 노트북이  보편화되다 보니 생겨난 공간이다.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나오고 220 볼트 전기도 마음껏 쓰게 해준다. 열람실처럼 늦게까지 운영하는 건 좋은데 제공하는 좌석에 비해 이용자가 많아 자리 잡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 아, 물론 본인 노트북을 들고 가야 한다.

식당(매점)
도서관에서의 꽉 찬 하루를 완성시켜주는 핵심 시설이다. 지하에 식당과 매점과 같이 있는데 보통은 맛이 없는 대신 싸고, 저녁식사 이후에 식당이 문을 닫을 때 매점도 같이 영업을 종료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옛날에 지은 도서관들은 산 중턱에 있어서 밖에 나가서 뭐 하나 사먹으려면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는 점도 주의사항이다. 나의 경우는 몇 번 간식 사먹으러 나갔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다.


파주에 위치한 도서관 '지혜의 숲'과 김성철. 1년 365일, 24시간 개방에 기존 분류법을 벗어난 파격적인 운영을 선보여, 관계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도서관에 아무리 책이 많아도 읽고 싶은 책이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분야를 특정 짓지 않고 서가를 쭉 걸어 다니며 제목과 표지만 보고 책을 뽑아 든다. 그러면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를 듣게 되는 것처럼, 의외로 재미있는 책을 만나게 되는 날이 꽤 있었다.

책이라는 게 꼭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어제는 별로였는데 오늘은 괜찮은 경우도 있고, 어려워서 읽히지 않던 책들이 재밌게 들어오게 되는 경험도 더러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책은 몇 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은 글자로 적혀있는데 내 마음이나 상황이 변해서 다르게 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만 탓할 일이 아니다.

그 사람도 처음엔 별로였는데 다른 곳에서 보니 마음에 들고, 어제는 미웠는데 오늘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럼 우리는 이번 주에 도서관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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