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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Nov 25. 2015

나 베트남 간다

00. 어드벤처 in 베트남 - 베트남을 가는 이유

내가 베트남 여행을 계획한 건  지난여름부터였다.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마침 한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4박 5일짜리 워크숍이 눈에 띄었다. 문화, 예술 창작자나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워크숍이었는데, 무엇보다 거의 공짜였고, 50여 명의 예술가들이 강연자로 나서는 행사였다. 미술, 음악, 안무, 문학 등 창작자부터 전시, 출판 등 문화 기획자와 평론가들이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만 저 앞에서 자기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또 자기 길을 가려고 걸음을 시작한 사람들도 궁금했다. 프로그램은 크게 200여 명의 참가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과 소규모 그룹으로 진행되는 워크숍으로 구성돼 있었다.


베트남 여행 계획은 둘째 날 아침, 방현석이라는 소설가의 강연에서 시작됐다. 그는 소설가였지만 놀랍게도 '아시아의 또 다른 냉전체제, 베트남과  우리'라는 강연 제목을 들고 나왔다. '가로지르기'가 워크숍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강연이 다소 예비군 훈련 같더라도 잘 들으리라 다짐했다. 역시나 그 소설가는 베트남의 역사를, 전쟁을 중심으로 읊어나갔다.

"메뚜기가 코끼리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이 실현됐다는 디엔 비엔 푸 전투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는 베트남전까지 이야기가 지나갔다. 확실히 소설가라서 말은 술술 재미있었지만 지금 강연 내용을 다시 봐도 베트남 전쟁사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디엔 비엔 푸 전투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피식민지 국가가 본국을 상대로 승리한 전쟁이었다는 것(상대는 프랑스였다). 또 공산주의에 맞서던 대통령들이 줄줄이 대국민  거짓말을하고 헬리콥터로 도망갔다는 정도다.

사실 디엔 비엔 푸 전투라는 이름도 지금 다시 책을 들춰보고 적은 건데, 그날부터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까지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호찌민이라는 인물이었다. 방현석 소설가가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표현을 쓰며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호찌민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다.

호찌민이 시행했던 일명 호찌민 장학생에 관한 이야기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쟁통에 국비 장학생을 선발해 해외로 유학을 보내며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공부를 마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이 아저씨(베트남 국민들은 호찌민을 '호 아저씨'라고 불렀다)에게 하고 가야 할 약속이다. 이 전쟁은 굉장히 길고 힘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형제, 부모도 많이 희생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은 공부를 중단하고 조국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비록 이 전쟁이 어렵고 길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우리가 이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겼을 때 파괴된 조국을 아름답게 재건하는 그것이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의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공부하는 것이 전투다."

압축하면 '힘들지만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테니 그때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해달라'는 말이다. 이 말을 다시 크게 한 바퀴 돌리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때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집니다'라는 뜻도 된다. 공자님도 말씀하신 '군군신신 부부 자자'의 진리.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들은 지 1년 반이 지났다.

아름다운 사회와 우리들의 의무를 생각하다 각자의 자리를 생각했고, 결국 내 자리도 살펴보게 됐다. 내 자리를 보니 내가 하는 일도 보이고 사람들도 보이고 우리집도 있었다.

호 아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결국은 '나'를 보게 됐다.

일단 내가 '나'여야 집도 있고 친구도 있고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닌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결국에 이  글도 몇 글자로 압축이 가능하다.



나 베트남 간다.




- 앞으로 힘닿는 대로 신나는 베트남 어드벤처의 과정을 연재합니다. 아직 한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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