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변에 있는 카이로 람세스 힐튼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로비로 내려왔다. 악사의 연주에 맞춰 우리 일행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침이었지만 나도 용기를 내어 함께 호흡을 맞췄다. 피곤할 수도 있었던 하루가 가볍게 열렸다.
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사카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집트 최초의 대규모 석조 무덤인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다. 성곽을 닮은 입구를 통과하니 좁고 긴 복도가 나타났다. 조세르 피라미드 단지의 공식 관문인 열주랑이다. 양옆으로 거대한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파피루스 다발을 형상화한 기둥의 질감은 투박하지만 단단하다. 열주랑이 끝나자 6단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아 올려진 최초의 석조 건축물, 계단식 피라미드가 위용을 드러냈다.
조세르 왕의 재상이자 의사였던 임호텝은 천재적인 건축가였다. 그는 영원히 죽고 싶어 하지 않는 왕 조세르를 위해 썩지 않는 재료인 돌을 사용해 마스타바를 만들었다. 하늘에 닿고 싶어 했던 파라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각형의 무덤인 마스타바를 6단으로 쌓아 올렸다. 그것이 이집트의 상징이 된 삼각형 피라미드의 시작이었다. 4,700년 전의 돌들은 세월에 깎여 모서리가 뭉툭해졌지만 그 무게감은 여전하다.
본체 아래에는 총길이 5.7km에 달하는 지하 갤러리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수직으로 28m를 파 내려간 지하 세계는 왕과 왕족의 안식을 위해 설계되었다. 이 지하 도시는 살아서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인간이 죽음 이후의 삶을 얼마나 집요하게 준비했는지 보여준다.
조세르 이전까지 왕들의 무덤은 평평한 진흙 벽돌집 모양의 마스타바였다. 그것들은 이미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피라미드 주변에는 조세르 이후에 만들어진 직사각형 돌 구조물인 마스타바가 흩어져 있다. 고위 관료나 귀족의 무덤이다. 마스타바의 핵심 구조는 수직 매장 갱도다. 지상 건물 아래로 20~30m씩 깊게 파 내려간 구덩이 끝에 시신을 안치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간 귀족의 무덤에서는 삶의 냄새가 진동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부조들은 4천 년 전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리를 잡고 짐을 나르고 밭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나 정교한지 금방이라도 살아서 걸어 나올 것 같았다. 왕은 죽어서 신이 되어 하늘로 가는 것을 꿈꿨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이 땅에서의 풍요로운 일상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죽음의 공간 한복판에서 만난 펄떡이는 삶의 활기가 묘하게 위안을 주었다.
줄을 서서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에 조세르 왕의 석상이 있다. 원래 이 구멍은 왕의 영혼인 카(Ka)가 밖에서 진행되는 제사 의식을 지켜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영혼이 그 구멍을 통해 바깥을 보았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 구멍을 통해 왕을 본다. 진품은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여기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텅 빈 눈과 깨진 코, 약간 벌어진 입을 가진 조세르 왕의 석상은 품위가 있다기보다 안쓰러워 보였다. 조세르의 돌무덤은 죽음을 위한 건축이 아니라 불안을 달래기 위한 건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스타바를 지나던 중 낙타에 올랐다. 이집트에 왔으니 낙타를 타고 찍은 사진 하나 쯤은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낙타의 안장에서는 특유의 가죽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 났다. 차라리 낙타를 타고 이동했더라면 나았을 것을, 낙타는 제자리에 서서 사진만 찍고 내리는 우리를 위해 무릎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해야 했다. 낙타가 무릎을 꿇고 일어날 때 느껴지는 비대칭적인 흔들림과 높이감이 내게는 흥미였지만 낙타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사카라에서의 마지막 코스는 우나스 피라미드였다. 밖에서 볼 때는 무너진 돌무더기 같은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좁고 낮은 통로를 지나기 위해 몸을 반으로 접고 한참을 내려갔다. 들어오지 말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 즈음 도착한 매장실은 반전이었다.
어두운 방 천장 가득 푸른색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4,700년이나 지났음에도 그 아름다운 색감이 여전하다. 벽면은 히에로글리프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치 문자들이 돌벽을 뚫고 나올 듯 선명하다. 방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현무암 석관은 묵직해 보이지만 외로웠다. 모든 화려함의 끝은 결국 이 좁은 방 한 칸이었던 것이다.
의문이 생겼다. 사카라가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 지역이라는데, 왜 전성기인 기자의 대피라미드에도 없던 아름다운 별과 상형문자가 이곳 우나스 피라미드에 있는 것일까. 알고 보니 사카라는 한 시대의 유적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기원전 2,630년경의 조세르(3왕조)부터, 기자의 대피라미드 시대(4왕조)를 지나 다시 돌아온 기원전 2,350년경의 우나스(5왕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었다.
왕조가 바뀌며 피라미드의 외형은 작아지고 돌무더기처럼 변했지만 대신 내면을 채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빼곡히 적힌 상형문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죽은 왕이 저승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사후 세계 가이드북이었다. 먼 옛날 어둡고 좁은 이 방에서 사제들은 횃불을 들고 이 주문들을 낭독했을 것이다. 왕의 영혼이 저 천장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지상으로 나오는 계단길은 죽은 파라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상징한다고 했다. 계단을 오르자 하늘이 아닌 살아있는 세계가 나왔다. 쨍한 햇빛과 먼지를 담은 건조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상인들은 1달러를 외치고 있었다. 수천 년 전의 현장을 다녀와서인지 살아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 풍경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