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로 불리고 싶은 가이드를 추억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는 것

by 이엔 지민

10일간의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거대한 피라미드의 침묵과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여행을 함께한 '가이사'였다.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난 이들은 여행 꽤나 해봤다는 베테랑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입을 모아 "최고의 가이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남자. 그는 우리에게 자신을 가이드가 아닌 '가이사'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처럼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의 바람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 여행을 좋아했고, 길 위에서 느낀 기쁨과 정보를 다른 여행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가이드 일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사' 자 돌림의 호칭만은 욕심내고 싶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그를 '가이사님'이라 불렀다. 그는 그 호칭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당하면서도 겸손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지만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여행 내내 그가 들려준 이집트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는 방대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판에 박힌 지식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하나라도 더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말의 속도는 적당했으며 따뜻했다. 일행 중 한 명이라도 발걸음이 늦어지면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기다렸다. 모든 사람이 도착해 눈을 맞춘 뒤에야 설명을 시작했다. 수도 없이 반복했을 법한 설명도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아침에 버스에 오르면 그는 그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를 한 편 골라 낭송해주곤 했다. 육성으로 들려준 시는 건조하고 오염된 이집트의 공기를 잠시나마 한결 가볍게 느끼게 했다. 어떤 날은 시 대신 음악이 버스 안을 분위기 좋은 카페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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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안 빌리지 가는 도중 선상에서 본 풍경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배를 타고 누리안 마을로 향하던 때였다. 나일강 위의 반짝이는 윤슬과 강바람, 그리고 강변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호흡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때 그가 준비해 둔 음악이 흘러나왔다. 풍경과 어우러지는 선율이 더해지자 눈앞의 장면은 풍경이 아니라 감정이 되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20260112_172450.jpg 누리안 빌리지에서 본 석양의 하늘빛

여행에는 늘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긴다. 보통의 젊은 가이드라면 당황했을 법한 순간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 모습에서 자존감 높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품위와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전혀 달라진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의 경비원 아저씨가 떠오른다. 젊은 시절 대기업 부사장을 지냈다는 그분은 늘 정갈한 경비원 유니폼 차림으로 주민들을 맞이했다. 주민이 지나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밝게 인사를 건넸고,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이 보이면 달려 나와 도와주었다. 어느 날 분리수거장에서 유리병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내는 그를 보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번듯한 직함은 없지만 여전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을 느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를 마주칠 때마다 나의 하루는 가벼워졌다.


이집트에서 만난 가이사와 아파트의 경비원 아저씨,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일에 깊이 만족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행복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까지 전해진다는 것이다.

여행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가이사가 보여준 성실함과 당당함, 그리고 그로부터 선물 받은 행복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누군가는 그저 생계를 위해 시간을 채우듯 일하고, 누군가는 같은 일 안에서 행복을 발견해 타인을 감동시킨다. 나는 늘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나는 무엇을 통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30대 초반의 그 당당한 ‘가이사’는 필레 신전이나 투탕카멘의 황금가면보다 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