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대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삶을 상징하는 동쪽과 죽음을 나타내는 서쪽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나일강 서쪽의 사막에서 수천 년을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한 지반은 기자(Giza) 고원뿐이었기에 피라미드는 그곳에 건설되었다. 버스가 카이로 시내를 벗어나 기자 고원으로 향할수록 심장이 빠르게 뛴다. 책과 영상으로 수없이 보았던 그 풍경을 이제 내 눈으로 확인할 차례다.
피라미드보다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THE GREAT GATE’라고 적힌 최신식 방문자 센터다. 소지품 검사는 공항 보안 검색대 만큼이나 엄격하다. 삼엄한 경비 때문에 긴장감을 느끼기 보다는 소중한 유산을 지키려는 노력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된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센터 내부는 쾌적하다. 쿠푸 왕에서 아들 카프레, 손자 멘카우레로 이어지는 가계도와 거대한 채석장의 풍경이 인포그래픽으로 펼쳐진다. 구리 끌 하나로 거대한 돌을 자르고, 나일강을 건너 경사로로 쌓아 올렸던 5천 년 전의 현장. 당시 노동자들이 쓰던 투박한 토기와 수평 도구를 보고 있자니, 기계 하나 없이 맨손으로 이 기적을 일궈낸 고대인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방문자 센터는 일종의 정거장이다. 피라미드를 보러 가기 위해서 전기버스를 탔다. 과거 여행자들이 낙타 호객꾼에게 시달리며 힘들게 올랐던 길을, 이제는 전기로 움직이는 버스를 타고 쾌적하게 5천 년 전의 현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려서자 빛바랜 사막과 시리도록 파란 하늘, 그리고 그 한가운데 우뚝 선 삼각형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압도감. 그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사막 한가운데 넓게 흩어져 있는 피라미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무겁다.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 하나에는 2.5톤짜리 돌이 230만 개나 쓰였다. 숫자로만 알던 그 무게가 실물이 되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지대가 높아 아버지인 쿠푸 왕의 것보다 더 커 보이는 아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까지, 5천 년 전의 기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세밀하고 과학적이라 차라리 외계인의 문물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다.
압도적인 돌무덤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즐긴다. 원근법을 빌려 피라미드 꼭대기를 손끝으로 톡 집어 올리는가 하면, 그 거대한 덩어리를 두 손으로 가뿐하게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5천 년의 역사와 575만톤의 무게가 담긴 피라미드를 쥐락펴락하는 그들의 표정은 아이처럼 해맑다. 사막 위를 오가는 낙타와 말, 그 사이를 점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마치 어느 영화의 장면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피라미드를 뒤로하고 조금 이동하자, 익숙한 실루엣이 기다리고 있다. 스핑크스. 사자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 이 거대한 수호신은 오랜 세월 모래바람을 견디며 묵묵히 동쪽만을 응시하고 있다. 자신의 얼굴 주인인 카프레 왕이 태양처럼 부활하여 돌아오길 4,500년째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는 피라미드를 지키는 문지기이지만 그 임무는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 왕의 무덤은 도굴당했고 자신의 코는 깨져 나갔다. 지키고 싶었으나 끝내 지키지 못한 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거대한 앞발 위에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훼손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은 여전하다.
어떤 사람은 스핑크스와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고, 다른 사람은 어깨를 감싸 안는 포즈를 취한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의 깨진 코를 한번 쓸어주고, 단단한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그 긴 세월, 모래바람 맞으며 홀로 얼마나 외로웠을까.
의외인 것은 호객꾼들의 분위기다. 악명 높은 이집트의 끈질긴 상인들을 응대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지만 현장은 생각보다 평온하다. 스카프나 조잡한 기념품을 흔들며 “원 달러”를 외치기는 하지만 블로그에 써놓은 것처럼 옷자락을 붙잡거나 길을 막지는 않는다. 정부의 엄격한 단속 덕분이라고 한다. 덕분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사막과 돌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파라오의 영원한 삶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거대한 피라미드. 하지만 내부는 이미 오래전에 도굴 당해 텅 비어 있다. 그 넓은 공간을 채웠던 황금과 보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간의 욕망 속에서 녹여지고 부서져 사라졌으리라. 신의 자리에 서고 싶었던 파라오도 결국은 유한한 인간이었다. 수십만 명의 땀과 피를 제물로 하고 사후 세계를 준비했지만 지금 남은 것은 거대하지만 텅 빈 돌무덤 뿐이다. 미라조차 남지 않은 그 빈방을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해진다.
죽음 이후를 위해 쏟아부었던 그 에너지를 살아있는 백성들의 삶을 위해 썼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파라오의 그 덧없는 욕망 덕분에 후대의 나는 피라미드의 규모와 건설의 신비 앞에서 감탄할 수 있다. 유난히 파란 카이로의 하늘 아래, 죽음 이후를 위해 쌓아 올린 거대한 욕망의 흔적이 색이 바랜 채 서 있다. 피라미드 앞에서 한없이 작기만 한 나는 남은 생의 시간 동안 무엇을 남겨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