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된 거대한 요새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EM)을 만나다

by 이엔 지민

사카라의 거친 모래바람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현대 이집트의 새로운 상징,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EM)이다. 10억 달러가 넘는 예산과 20년의 시간을 쏟아부어 완성된 이곳에는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건물은 유리로 된 거대한 요새 같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외계로 떠나는 터미널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KakaoTalk_20260129_142742023_06.jpg
KakaoTalk_20260129_142742023_04.jpg
KakaoTalk_20260129_142742023_05.jpg
오벨리스크, 지지대 옆에 새겨져 있는 각 나라의 언어로 써진 국가명, 오벨리스크 바닥에 쓰여있는 람세스 2세의 카르투슈


박물관 광장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세계 최초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설계된 오벨리스크다.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를 허공에 세워, 수천 년간 땅바닥에 숨겨져 있던 밑면의 카르투슈까지 고개를 들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혁신적인 전시는 이집트 정부가 이곳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신왕국6번.jpg


내부로 들어서자 11m 높이의 압도적인 람세스 2세 석상이 사람들을 보고 있다. 3,200년 된 이 거상은 오랫동안 카이로의 람세스 기차역 광장에서 매연을 뒤집어쓰고 서 있었다. 2018년에 허허벌판인 공사 현장에 동상을 먼저 세우고 그 위로 지붕과 벽을 덮어 박물관을 완성했다. 그가 이 박물관의 실질적인 주인인 셈이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 관람객을 내려보고 있는 왕의 모습이 만족스러워 보인다.


KakaoTalk_20260129_133406509_14.jpg
KakaoTalk_20260129_133406509_13.jpg
KakaoTalk_20260129_133406509_12.jpg
완벽하게 복원되어 전시 중인 쿠푸왕의 배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그랜드 스테어케이스를 지나 별도로 마련된 전시관으로 먼저 향했다. 그곳에는 공중 부양하듯 전시된 거대한 목선 쿠푸 왕의 배가 있다. 기자의 피라미드 옆 좁은 구덩이에 1,224개의 조각으로 분해되어 묻혀 있었던 바로 그 배다.


길이 42m에 달하는 이 배는 못 하나 쓰지 않고 레바논 삼나무를 밧줄로 엮어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저 배가 정말 4,500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온 것일까. 과거에는 피라미드 옆 낡은 박물관에 갇혀 있었지만 2021년 군사 작전 같은 수송 작전을 통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배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나무를 휘어 배를 만든 기술도 놀랍지만, 더 깊이 와닿은 것은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다. 파라오에게 저승은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생생한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이 배에 현세의 모든 영광을 싣고 은하수를 건너 영생의 땅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박물관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랜드 스테어케이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1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계단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파라오의 형상에서 시작해 신전의 기둥과 신들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영생을 위한 석관에 이르는 네 단계의 여정. 이것은 인간이었던 왕이 계단을 오르며 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무빙워크에 몸을 싣고 천천히 올라가며 거대한 석상들을 마주하니, 마치 고대 파라오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4층 꼭대기에 다다르자 전면의 통유리창 너머로 기자의 피라미드가 그림처럼 나타난다. 5천 년 전 파라오의 무덤과 21세기의 박물관이 시공간을 초월해 마주 보고 있다. 이 설계를 위해 건축가는 얼마나 고뇌했을까. 창밖의 피라미드를 마주하는 순간 심장 박동이 잠시 멈추는 듯하다.


신왕조15번.jpg
신왕조39번.jpg
신왕조41-1번.jpg
신왕조26번.jpg
신왕조47-1번 (2).jpg
신왕조34번.jpg
신왕조25번.jpg
신왕조16번.jpg
신왕조42번.jpg
신왕조43-1 (1).jpg


드디어 이 박물관의 존재 이유가 된 투탕카멘 갤러리에 들어섰다. 이곳은 전시실이라기보다 3,300년 전 열여덟 살에 요절한 청년 왕의 흔적을 보존해 둔 거대한 기록 보관소 같다. 황금으로 번쩍거리는 5,000여 점의 유물이 눈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BandPhoto_2026_01_29_13_12_11.jpg
BandPhoto_2026_01_29_13_11_47.jpg
BandPhoto_2026_01_29_13_12_14.jpg
BandPhoto_2026_02_08_18_48_21.jpg
BandPhoto_2026_01_29_13_12_30.jpg
BandPhoto_2026_02_08_18_49_08.jpg
KakaoTalk_20260129_142336365_22.jpg
KakaoTalk_20260129_142336365_25.jpg


투탕카멘의 미라를 열어보는 과정은 마트료시카 인형을 여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가장 바깥에 집채만 한 네 겹의 황금 사당이 있고 그 안에 석관이, 다시 그 안에 세 겹으로 사람 모양 관이 층층이 들어 있다. 미라를 직접 감싸고 있던 마지막 속관은 110kg의 순금 덩어리다. 왕의 시신이 썩지 않기를 바랐던 간절함이 겹겹의 관과 황금의 무게를 통해 절실하게 전해진다.


KakaoTalk_20260129_142336365_16.jpg
KakaoTalk_20260129_142336365_13.jpg
KakaoTalk_20260129_142336365_15.jpg


모든 관을 열고 만난 것은 그 유명한 황금 가면이다. 높이 54cm, 무게 11kg의 순금 가면. 청금석으로 짙게 화장한 눈가와 흑요석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황금빛 얼굴 뒤로 모든 것을 가졌으나 채 피기도 전에 세상을 등져야 했던 청년 왕의 창백한 얼굴이 겹쳐 보인다.


신왕조24번].jpg
KakaoTalk_20260129_133406509_07.jpg
이 잔에 새겨진 투탕카멘의 카르투슈를 보고 하워드 카터가 끝내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했다.


투탕카멘 무덤의 발견은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의 우직한 집념이 만든 결과였다. ‘왕들의 계곡’에는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는 비웃음 속에서도 그는 6년 동안 모래밭을 뒤졌다. 후원자마저 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한 마지막 시즌, 기적처럼 무덤의 입구를 찾아낸 것이다.


신왕조40-1.jpg
신왕조40-2.jpg
황금의자와 벨트 버클에 새겨진 청년왕 투탕카멘과 그의 아내 앙케세나멘

하지만 화려한 유물보다 마음을 세게 흔든 것은 왕의 이마 위에 놓여 있었다는 작은 꽃다발 하나였다. 건조한 사막의 공기가 박제해 버린 3천 년 전의 꽃. 그것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어린 왕비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을 것이다. 차가운 황금관 위로 떨어졌을 그녀의 눈물과 손끝의 떨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영원히 썩지 않는 황금보다, 결국은 시들어 바스러져 버린 그 꽃 한 송이가 더욱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신왕조50번.jpg
신왕조48번.jpg
중왕조 2-3.jpg
신왕조2번.jpg
신왕조3번 (1).jpg


투탕카멘관을 나오면 이집트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메인 전시관이 이어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대가 흐른다. 거대한 석상으로 절대 왕권을 과시하던 고왕조를 지나, 왕의 표정이 한결 인간적으로 변모한 중왕조를 만난다. 이어지는 신왕조에서는 람세스 2세와 핫셉수트 등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강력한 파라오들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고유문화와 그리스-로마 문화가 섞인 이국적인 조각상들이 묘한 매력을 풍기는 그레코-로만 시대로 마무리된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흙과 돌로 쌓은 고대 피라미드와 유리와 콘크리트로 만든 현대 피라미드가 머릿속에서 겹쳐진다. 수천 년의 격차를 둔 두 시대가 맞물리면서 이집트라는 나라가 가진 시간의 깊이와 힘이 묵직하게 전해진다.


5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기에 반나절은 턱없이 짧다. 7개월 동안 매일 찾아와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거라던 전문가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눈인사만 건네고 스쳐 지나간 유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박물관을 나선다. 언젠가 다시 올 때는 시계를 보지 않겠다. 오직 그들이 침묵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 속 멀리까지 시간 여행을 떠나야겠다.




DSC01184.JPG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작가의 이전글파란 하늘 아래, 텅 빈 돌무덤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