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EM)에서 읽은 고대 이집트 이야기(1)
수천 년의 모래바람을 뚫고 살아남은 유물들이 있다. 아무리 작은 파편이라도 그 안에는 거대한 서사가 잠들어 있다. 유물을 통해 과거를 말한다는 것은 오류를 품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시도다. 그럼에도 침묵 속에 갇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귀를 기울인다. 오해일지라도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고왕국 이야기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 단지에서 발견했다. 진흙 대신 돌을 쌓아 영원히 썩지 않는 돌의 역사를 시작한 파라오다. 두꺼운 가발을 쓰고 턱수염을 달고 있다. 원래는 보석으로 된 눈이 박혀 있었을 것이나 도굴꾼에게 도둑맞아 휑하니 뚫려 있다.
몸에는 셉 축제의 예복(몸에 딱 붙는 긴 망토)을 입고 서 있다. 셉 축제는 30년 된 왕이 힘을 리셋하는 왕권 갱신 축제이다. 조세르가 입은 옷은 그 축제에서 다시 태어난 왕임을 보여주는 부활의 망토다. 그는 죽어서도 이 축제를 영원히 즐기며 강력한 왕으로 남고 싶어서 피라미드 안에 있는 자신의 석상에 이 옷을 입혀 놓았다.
빛이 투과될 정도로 맑고 깨끗한 최상급 돌인 이집트 알라바스터(방해석)로 만들어졌다. 내부가 4칸으로 나뉘어 있다. 이 안에서 헤테페레스 1세의 내장 기관이 4,0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방부액 속에 담긴 채 발견되었다.
헤테페레스 1세는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를 만든 건축광 스네프루의 아내였고, 대피라미드의 주인 쿠푸왕의 어머니였다. 쿠푸왕은 자신의 피라미드 바로 옆, 가장 가까운 곳에 어머니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었다. 대피라미드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그녀는 지금도 아들의 보호를 받으며 고요히 잠들어 있다.
보통 파라오의 석상은 검은색 화강암이나 현무암처럼 강하고 딱딱한 돌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석상은 독특하게도 우윳빛이 도는 이집트 알라바스터(Calcite, 방해석)로 만들어졌다. 알라바스터는 빛을 머금고 통과시키는 성질이 있다. 딱딱한 돌이라기보다는 마치 비누나 양초를 깎아 만든 것처럼 표면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보인다. 박물관 조명을 받으면 파라오의 피부가 은은하게 빛나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 석상은 수백 개의 조각으로 발견되었다. 1909년 발굴 당시,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장례 신전(Valley Temple) 바닥에 산산조각나 있던 것을 고고학자들이 하나하나 맞춰서 복원해 낸 것이다. 자세히 보면 팔이나 다리 부분에 갈라진 금들이 보이는데, 이것은 깨진 돌을 이어 붙인 역사의 상처이자 현대의 집념이다.
재미있는 점은 거대한 몸집과 두꺼운 다리에 비해 머리가 조금 작게 표현되었다. 관람자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볼 때를 고려한 비율일 수도 있고, 고왕국 시대 특유의 육체미를 강조하는 양식일 수도 있다. 떡 벌어진 어깨와 튼튼한 하체에서 왕의 건재함이 느껴진다.
초기 이집트에서 영생은 오직 파라오만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피라미드 시대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왕을 보좌하던 능력 있는 관료들도 점차 자신들의 무덤(마스타바)을 짓고 영원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들은 죽은 뒤의 모습(미라)이 아니라 살아서 가장 젊고 건강했던 순간의 모습을 남겼다. 아내의 손을 잡고 있거나 자식들과 함께 있는 모습 등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한 가족의 풍경이 담겨 있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영생을 꿈꾸었던 사람들. 고왕국의 귀족과 관리들이 가족과 함께 오밀조밀 모여 있다. 거대한 파라오의 석상과 다르게 채색된 피부와 다정한 포즈에서 4,500년 전 피라미드 시대를 살았던 생활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남자들의 피부는 붉은 갈색(바깥 활동), 여자들의 피부는 연한 노란색(실내 활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조각상들은 무덤 안의 밀실인 '세르답'에 놓여 있었다. 세르답은 죽은 자의 영혼이 깃든 조각상을 모셔두는 방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무겁고 두툼한 가발은 당시 귀족의 신분을 상징한다. 발이 닿아 있는 받침대의 앞부분이 둥글게 처리된 것은 고왕국 석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의 모양이 다르다. 오른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고(엄지가 위로 향함), 왼손은 편안하게 펴고 있다. 왜 한 손은 쥐고 한 손은 폈을까? 이는 고대 이집트 관리의 덕목을 상징한다. 꽉 쥔 주먹은 엄격한 권위와 명령을, 활짝 편 손은 수용과 너그러움(혹은 공물 수령)을 의미한다. 수만 명의 노동자를 지휘해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려면 이 두 가지 리더십이 모두 필요했을 것이다.
단단한 돌에 새겨진 그의 표정에는 감정이 없다. 오직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무뚝뚝한 책임감만이 흐른다. 4,500년 전, 사막의 열기 속에서 설계도를 쥐고 현장을 지휘했을 임호텝의 후예들. 이집트 문명은 바로 이들의 단단한 어깨 위에서 완성되었다.
석회암에 채색된 이 상도 남자는 붉은 갈색, 여자는 연한 노란색(크림색)으로 칠해져 있다. 남자는 짧고 단순한 킬트, 여자는 몸에 딱 붙는 민무늬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장식보다는 몸의 건강함을 강조하던 시대였다. 여자가 오른손으로 남편의 팔을 감싸고 있다. 이는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남편을 지지한다는 표현이다. 남편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영생을 얻으려면 아내의 내조와 영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군더더기 없는 옷차림, 건강한 신체, 그리고 서로를 단단히 붙잡은 손.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영원을 꿈꿨던 시대답게 사람들의 사랑도 복잡한 감정보다는 변하지 않는 단단함을 지향했던 것 같다.
남편은 지팡이와 홀을 쥐고 권위를 보여주며 아내는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남편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하단에는 작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들은 자녀들이거나 영원히 제사를 지내줄 봉헌자들이다. 오른쪽에 빼곡하게 적힌 상형문자들은 이리 부부가 먹을 영원한 식단표이다. "천 개의 빵, 천 개의 맥주, 천 마리의 황소, 천 마리의 새..." 이집트인들은 돌에 음식 이름을 새겨놓으면 실제로 음식이 없어도 주문(마법)을 통해 영원히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믿었다.
중왕국 이야기
아멘엠하트1세는 피라미드의 시대(고왕국)가 무너지고 혼란스러웠던 암흑기(제1중간기)를 끝낸 뒤, 다시 이집트를 강력하게 통일하여 중왕국의 문을 연 주인공이다. 이 돌덩이에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합치려는 왕의 의지가 완벽한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중앙의 상형문자(왕의 이름)를 기준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두 명의 왕이 마주 보고 있다. 왼쪽에는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하얀 왕관(헤제트), 오른쪽에는 하이집트를 나타내는 붉은 왕관(데슈레트)을 써서 남북의 통치자임을 보여준다.
양옆의 호루스(매)는 남북이 합쳐진 이중 왕관(프스켄트)을 쓰고 신의 권능으로 완성된 이집트의 완전한 통일을 상징한다. 두 왕 모두 와스(Was, 힘) 지팡이와 앙크(Ankh, 생명)를 쥐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중앙의 카르투슈를 향해 서 있다. 그는 자신이 남쪽 상이집트만의 왕도 북쪽 하이집트만의 왕도 아닌, 두 땅을 완벽하게 결합한 유일한 지배자임을 백성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이 돌덩어리는 “이제 이집트는 다시 하나다”라는 정치적 선언문이다.
이집트 남쪽(상이집트)을 지배하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백색 왕관 헤제트를 쓰고 있는 세누스레트 1세의 석상이다. 왕의 뒤 창문 밖으로 진짜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보인다. 아멘엠하트 1세의 아들인 세누스레트 1세(제12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가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고왕국의 피라미드를 바라보고 서 있는 듯한 구도이다.
기둥(석비)에 새겨진 사람도 동일한 왕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왕의 이름이 적힌 깃발(세레크)과 다양한 상형문자들이 그를 감싸고 있다. 입체적인 동상과는 달리 돌 표면을 얇게 깎아내어 그림처럼 표현했다. 수천 년 전 장인이 돌 위에 왕의 옆모습을 얼마나 정교하게 그렸는지 알 수 있다.
중왕국이라는 재건의 시대를 살았던 왕은 상처 입은 몸으로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다. 그는 무너졌던 왕권을 다시 세우고,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피라미드 시대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했다. 박물관 유리창 너머의 과거(피라미드)와 전시장 안의 중흥 군주(세누스레트 1세)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이 풍경은 유물을 배치하면서 역사의 대화를 시도한 큐레이터의 의도가 느껴진다.
근육질의 젊은 몸에 자신감 넘치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세누스레트 1세의 모습. 왕권이 안정되고 나라가 부강했던 시절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신(오시리스)이 된 왕으로서의 세누스레트 1세의 모습. 이 석상은 왕이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살아있을 때 입는 짧은 치마 대신 미라처럼 온몸을 흰 천으로 감싸고 있다. 가슴 위의 두 팔을 X자로 교차한 자세는 왕권과 신성함의 상징이다. 이것은 나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강력한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누스레트 1세는 아멘엠하트 1세의아들이다. 그 뒤로 아멘엠하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를 거쳐 아멘엠하트 3세로 이어진다.
”왕이라는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고독하고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조각에 드러낸 파라오이다. 인간적이고 슬픈 파라오의 얼굴이다. 그런데 어깨와 가슴에는 람세스 2세의 이름(카르투슈)이 깊게 새겨져 있다. 모든 영광을 다 가졌던 람세스2세는 아무 왕의 석상이나 가져다가 자신의 카르투슈를 새기지는 않았다. 세누스레트 3세가 강력하고 위대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석상에 그 왕의 영혼(Ka)과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가 선조의 이름을 지우고 자기 이름을 새긴 것은 위대했던 선조 왕의 힘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자 그 힘을 흡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크나톤처럼 싫어하는 왕의 카르투슈는 아예 지워서 없애버렸다. 그럴 만큼 세누스레트 3세는 람세스 2세가 보기에도 훌륭했던 왕이었다.
검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유물은 아멘엠하트 3세의 검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려져 있던 벤벤석이다. 피라미디온은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놓이는 캡스톤이다. 수십만 개의 돌을 쌓아 올린 거대한 피라미드 공사는 마지막에 이 작은 돌 하나를 올림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4천 년 전, 이 돌의 뾰족한 끝부분은 금이나 엘렉트럼(금과 은의 합금)으로 덮여 있었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사막에서 가장 먼저 빛을 받아 번쩍이던 것이 바로 이 돌 끝이었다.
거대한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성역에 놓였던 돌이 박물관 바닥에 내려와 있다. 덕분에 나는 4천 년 전 왕만이 누릴 수 있었던 시선을 마주한다. 추락한 권위가 아니라, 우리 눈높이로 내려온 신의 배려처럼 느껴진다.
유난히 큰 귀와 발목까지 덮는 긴 치마를 입은 중왕국의 고위 관료. 큰 귀는 왕의 명령과 백성의 소리를 경청하겠다는 다짐이고, 긴 치마는 세월의 지혜를 입은 노련한 관리의 상징이다. 왼손에는 지위의 상징인 손수건을 꽉 쥐고 있고 오른손은 편안하게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고왕국 시대가 육체의 힘을 중시했다면 중왕국 시대는 경청과 복종이 관리의 최고 덕목이었다. 커다란 귀는 파라오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겠다는 충성심과 백성들의 고통을 귀담아 듣겠다는 책임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표정에는 들뜬 기색이 전혀 없다. 입은 굳게 다물고 눈은 정면을 응시하며 귀는 활짝 열어두고 있다. 당시 파라오들이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던 시기였기에 관료들은 늘 긴장하며 귀를 열어두어야 했다. 화려한 보석이나 근육 대신 듣는 귀와 생각하는 머리(가발)만을 강조한 이 석상은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맨 위에는 '와제트의 눈(호루스의 눈)' 두 개가 둥근 '쉔(영원)' 고리를 감싸고 있다. 이 비석과 주인을 영원히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부적이다. 호루스는 아버지 오시리스의 원수인 세트와 치열하게 싸우다가 왼쪽 눈이 뽑혀 산산조각이 났다. 이때 지혜의 신 토트가 조각난 눈을 모아 다시 온전하게 붙여주었다. 그래서 호루스의 눈은 단순한 신체기관이 아니라 상처 입은 것을 다시 낫게 하는 치유와 악을 물리치고 되찾은 승리를 상징한다. 이집트인들이 미라의 붕대 속에, 혹은 사람의 목걸이로 이 부적을 많이 사용한 이유는 강력한 복원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있는 빼곡한 상형문자는 봉헌 공식이다. "왕이시여, 오시리스 신에게 비오니, 이 사람에게 빵과 맥주, 고기와 새, 그리고 모든 좋은 것들을 내려주소서"라고 적힌 마법의 주문이다.
하단에는 의자에 앉은 부부(망자)와 그들에게 꽃과 음식을 바치는 자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왼쪽에 앉아 있는 남자는 손에 든 연꽃을 코에 갖다 대고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서 연꽃은 태양이 태어난 꽃이자 부활의 상징이다. 부활의 생명력을 들이마시고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를 담은 제스처이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뒤에도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고 믿었다. 돌에 음식과 주문을 새겨놓으면, 실제로 음식이 없어도 글자와 그림의 마법으로 영원히 배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주문을 새겨놓았다. 죽어서도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 싶었던 고대인들의 소박한 소망이 뭉클하다.